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요로운 식탁 Nov 15. 2019

내 남편은 전업주부

내 남편은 전업주부 

♧. 남편은 전업주부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본질을 깨달았다. 



비가 몹시도 오던 날, 아내하고 영영 헤어지려고 술을 마셨다. 그러나 아내는 그를 붙잡았다. 그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힘들겠지만, 서로 조금씩 노력해 보자고 애원했다.  

    

그는 변화를 위해 자신의 삶에 스스로 개입했다. 

조금씩 술을 줄여나갔고, 집안일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두려워서 술을 줄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본질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시대가 변하는 만큼, 그가 가진 신념과 가치관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내가 출근하면 설거지를 하고, 내친김에 집 안 청소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아내가 했던 대로 구석구석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를 깨끗이 빨아 바닥을 닦는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아내는 청소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평소에 아내가 했던 집안일을 머리가 기억하고 있어서 습관적으로 몸이 반동한 것이다.     

 

퇴근한 아내는 깨끗이 청소된 집안을 돌아보며 만족해했다. 아내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집안일을 해놓았다고 그를 칭찬하는 대신, ‘기분 좋다, 정말 기분 최고다,’라며 직접 안주를 만들어 술자리를 마련하고, 주거니 받거니 잔을 나누면서 이불 빨래는 어떻게 하면 쉬운지, 운동화는 비닐에 싸서 전자레인지를 한번 돌려주면 때가 뽀얗게 진다든지, 내일은 화초에 물을 줘야 한다느니, 시시콜콜 집안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시키지 않아도 그가 알아서 움직이도록 길들이는 아내의 고단수에 말려들었다고 후회할 즈음이면, 그의 입에서 콩나물 값이 올랐다, 시금치가 금치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겠다, 하는 따위의 살림꾼 같은 말들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아내가 쉬는 날은 천연 조미료 역할을 하는 다시마 우린 물과 멸치 볶기, 고추 조리기, 하물며 김치찌개 등, 어려운 요리법을 어깨너머로 엿보았다.      

그의 솜씨는 아내의 절반을 흉내 내게 되었다.      





이전 15화 여보, 사랑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