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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운 식탁 Nov 15. 2019

남편 길들이기

남편 길들이기 

♧. 남편 길들이기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남편은 자정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막걸리 지게미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현관문을 벌컥 여니, 만취한 남편이 벽에 기대어 삶은 문어처럼 다리를 배배 꼬고 서 있었다. 

뒷덜미를 낚아채 홈인 고고를 외치려는 찰나, 시커먼 물체 하나가 “안녕” 하며 손을 번쩍 쳐들었다.      

이 물건은 또 뭐래? 

이 친구는 남편을 술독으로 끌어들인 주범이다.    

  

‘아이고야, 주정꾼 하나 받아주기도 힘든데, 둘씩이나’      

밤을 어찌 보낼지 눈앞이 아찔하도록 현기증이 일었다.      

삼일 밥 굶은 시어미같이 인상을 쓰며 남편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미적미적 따라 들어온 친구, 들어오라는 말이 없어 멋쩍었는지 “우리 제수씨! 마음에 평화, 가슴엔 행복” 요러면서 쌍권총을 빠방 빠방 쏘더니 한쪽 눈을 슬쩍 감아 윙크까지 하는 게 아닌가.      

얼음 공장에 불 지르는 것도 아니고 누구 약 올리나? 


두 주정꾼을 프라이팬으로 뒤통수 후려갈겨 내쫓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마음에 평화, 가슴에 행복을 기원해준 갸륵한 아부를 물리칠 수 없어 밍그적거리며 들어오는 발길을 막지 않았다.   

   

남편은 한잔 더 하겠다며 들고 온 봉지에서 술을 주섬주섬 꺼냈다. 그러더니 안주가 마땅치 않다고 짜증을 부렸다.      

“어이, 여편네가 서방님이 한잔하시는데 안주가 김치뿐이야? 응? 친구 앞에서 내 위신이 뭐가 되냐고!”      

어쩐지 평소엔 쥐새끼처럼 찍찍대던 말소리가 우렁차고 용감하다 했다. 그놈의 위신, 겉치레 따지는 꼰대 짓을 누가 말리겠나. 공손하게 하늘 떠받들 듯 위신을 세워주기로 했다.   

   “이 새벽에 안주 장만은 무리예요. 미리 준비 못 해 놔서 미안해요”     

“그래? 뭐 그렇담 깜이 밥이라도 내오던가.”      


깜이는 집에서 기르는 반려견 그레이하운드다.      

코가 막히고 귀가 막혔지만, 왕의 하명을 받드는 무수리 심정으로 개 식량을 인간의 술안주로 내어줘도 되냐고 깜이한테 허락을 받은 뒤, 깜이 밥을 예쁜 접시에 담아냈다. 

     

그녀는 남편 친구들에게 현모양처로 통한다. 현모양처는 남편을 대할 때, 살갑기는 평양 나막신같이, 아끼기는 사자어금니같이, 남편 하는 짓거리가 사모에 갓끈이라 해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리인 법.      

도리를 다하기 위해 개밥을 예쁜 접시에 담긴 했지만, 개밥만 달랑 주는 것이 성의 없어 보였다.   

   

특히 손님까지 모셨는데, 식탁 세팅은 기본, 세팅에 따른 비주얼은 필수, 빛나는 솜씨를 발휘해서 받들어 모시는 것이 현모양처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틈나는 대로 제빵 기술을 배워보려고 사둔 휘핑크림을 개밥에 푹푹 버무렸다. 휘핑크림이 개밥과 어우러지니 궁합이 최고였다. 하얀 크림에 알알이 박힌 브라운 톤 개밥. 그 매혹적인 어울림은 찬사로 부족할 지경이었다. 식욕을 자극하는 달콤한 냄새까지 풍기니 이만한 안주가 어디 있으랴.      


둘은 달콤한 향이 죽인다며 얼른 먹고 싶다고 안달을 했다. 

 “기다려 주세요. 급하게 드시면 체해요.”

안질에 노랑 수건 마냥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생각해 주는 척 아양을 떨었다.      

 남편은 벌건 대낮에 그것도 친구까지 있는데 이 여편네가 무슨 꿍꿍이로 안 하던 짓을 하나, 눈치를 팍팍 주며 멀리 떨어지라고 손짓·발짓까지 동원했다.      

 머쓱하게 머리통을 어루만지던 남편 친구는 그녀의 행동이 애교로 보였는지 ‘제수씨, 따봉~’ 이러면서 엄지손가락 두 개로 남편의 가슴을 푹 찔렀다.      

‘학다리로 장구 치냐? 영혼 없는 후레자식들.’ 욕을 만발이 퍼붓고 싶었으나 현모양처인 순정은 참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입을 가리고, 수줍게 키 킥 웃는 웃음으로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밥숟가락을 남편과 친구에게 쥐여 주었다. 술 한잔을 홀짝 마시고, 옴팡지게 푹 떠서 먹는 모습이 참으로 복스러웠다.    

 

식탁에 턱을 괴고 두 남자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소복이 고봉으로 뜬 개밥을 게걸스럽게 먹는 주둥이를 주걱으로 오지게 쑤셔주고 싶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오도독오도독 개밥 씹는 소리까지 고소하게 들렸다. 입술에 묻은 크림을 혀로 날름날름 핥아먹는 모습을 보며 휘핑크림에 버무리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찬바람 이는 가을 새벽은 술에 굶주린 두 남자의 술타령에 쓰러지고 있었다.      

 남편은 언제쯤 정신을 차릴까,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나. 한심하고 어이없어서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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