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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운 식탁 Nov 15. 2019

아내가 변했다

아내가 변했다. 

♧. 아내가 변했다.    


  

아내는 천성이 조용하고 상냥한 성격을 타고나서 순종적이라고 믿어 왔는데, 한순간에 180도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놀라움과 충격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내는 당장 눈앞에서 꺼지든지, 이혼하기 싫으면 머슴으로 살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윽박질렀다.    

  

의식에 잠재된 모든 악을 부활시켜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질이었다. 악질도 이런 악질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대거리하자, 선과 악도 분별 못 하는 머저리를 이때껏 모시고 살았다고 억울해했다.          

“앞뒤 꽉 막힌 꼰대! 공존의 기술, 유연하게 소통하는 방법, 어쩌고 입으로는 잘만 지껄이더니, 대갈통에 든 것은 그 알량한 지식 나부랭이 암기해서 처넣은 것뿐이잖아? 소통은 주둥이로만 하는 게 아니야. 자 여기 메모지와 볼펜. 받아 써봐, 내가 한 수 가르쳐 줄게.”    

 

아,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우러러 모셔야 할 남편을 짓눌러 뭉개서 한주먹 거리로 만들더니, 그것도 모자라 아예 납작하게 깔아서 발아래 깔개로 쓸 요량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 가마니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래 좋아, 우리 헤어지지 말자. 대신 부르는 대로 받아써. 김윤재는 정 순정에게 무조건 복종한다. 명령을 어기거나 대들면 바로 이혼한다. 정 순정의 명령은 곧 법이다. 각서처럼 잘 이행하면 이혼은 고려해 볼게.”     

 한 가정의 가장이 아내 따위한테 휘둘리다니, 억울하고 분했다. 그러나 집을 나가지 않겠다는 계획은 성공한 것 같았다.      

 집 없고 돈 없는 백수가 당장 나가면 찬 이슬 맞으며 굶어 죽기 십상이다. 그래도 아내 곁에 있으면 먹고, 자고, 입는 것까지 자동 해결되니, 일단 집을 나가지 않는 것이 어디냐며, 시간이 좀 지나면 아내의 명령 따위는 별거 아닐 거라고, 요구하는 대로 각서를 썼다.     

 

각서를 쓰고 나자, 아내는 그동안 속을 썩인 첫 번째 대가라며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강한 타격이었다.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아온 억울함에 대한 반격을 시도할 거니까, 잘 막아보라고 조롱까지 일삼았다.           


아내의 경고처럼 뒤통수를 가격한 건, 시작에 불가했다. 김윤재라고 큰 소리로 불러서 대답을 안 하면 파리채로 발등을 후려치고, 목이 말라 물 한잔을 요구하면 얼음을 동동 띄운 얼음물을 정수리에 쏟아부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육체적 학대에 만족하지 못하면 노골적으로 시장을 봐오라고 장바구니를 들려줬다.    

  

장바구니는 당최 친해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시금치 한 단, 두부 한 모, 김치찌개용 돼지고기 한 근 등, 메모지에 적힌 물건을 카트에 담긴 해도 계산대 앞에서 수치스러워 장바구니를 꺼내지 못했다.      

장을 보지 못하고 털래털래 집으로 돌아오면, 여자와 뒹굴 때는 장을 잘도 보더니, 내가 그 여자만 못하냐며 장바구니를 팽개치고 행패를 부렸다.     


날이 갈수록 명령의 강도는 높아졌고, 그에게 채워진 머슴의 족쇄는 더욱 죄어들었다.      

참다 참다, 나가겠다고 짐을 쌌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주머니에 푼돈 한 푼 없이 거리를 헤매다,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정강이를 오지게 걷어찼다.      

“오죽 못났으면 밥 한 끼 챙겨주는 사람 하나 없냐! 옜다, 끓여 처먹어라.” 

한껏 비웃으며 라면 하나를 던져 주었다.      


라면을 끓여 먹고 나자, 어린 아들 달래듯이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입 닥치고 복종하면 용서해줄 날이 오지 않겠냐고, 실낱같은 희망을 선물해서 슬그머니 짐 가방을 풀게 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내는 변해도 너무 변했다. 아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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