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목걸이
♧. 진주 목걸이
원룸에 다녀온 날 이후, 남편은 이혼하자고 보채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어김없이 생활비는 그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빌라를 담보로 얻은 대출도 다 갚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편은 여자에게 갔다.
여자에게 가는 남편을 베란다서 지켜보았다. 남편의 옷자락이 가을바람에 펄럭였다.
바람은 남편이 맞고 있는데, 목덜미가 허전하게 시려 왔다. 스웨터를 여며도 시린 냉기는 잦아들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뼛속까지 스며든 시림이 송곳처럼 가시를 세워 온몸을 공격해 왔다.
뜨거운 물을 마시고 다시 부업거리를 잡았다. 각질이 허옇게 인 손가락이 떨릴 정도로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잠시 쉬면 괜찮아지겠지, 부업거리를 내려놓고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았다.
어느새 그녀는 습관처럼 진주를 꿰었다. 진주 목걸이를 완성해서 목에 걸면 이따위 한기쯤이야 금방 사라질 거라고, 옹골지게 바늘을 그러쥐었다.
하나둘, 셋, 진주는 순조롭게 줄을 타고 흘러내렸다. 옹골지게 그러잡은 바늘로 마지막 진주를 꿰려는 찰나, 바늘이 손가락 푹 찔렀다.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솟아났다.
그녀는 짜증스럽게 진주를 팽개쳤다. 목걸이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가. 아무리 꿰고 꿰어도 완성할 수 없었던 목걸이. 오늘은 반드시 완성해서 목에 걸리라, 이를 악물고 진주를 다시 꿰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너 개를 남겨놓고 또다시 그러잡았던 실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바닥으로 흩어진 진주는 내팽개친 부업거리 사이로 낱낱이 흩어졌다.
탐욕스럽게 진주를 그러모았다. 진주는 비웃듯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네깟 것이 무엇이길래 사람을 우롱하나.’ 은근히 화가 치밀어서 더욱 오기가 생겼다.
반드시 꿰어서 목에 걸어야지, 흩어지면 꿰고, 또 꿰었다.
어느덧, 집안으로 몰려들었던 햇살이 물러났다.
또다시 한기가 몰려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진주알을 꿸 수가 없었다.
완성하지 못한 목걸이를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그녀는 진주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팽개치듯 던져 놓은 진주는 그녀가 기를 쓰고 꿰었던 그 진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빛나지 않았다.
영롱한 빛을 발하던 진주는 그늘 속에서 한낱 보잘것없는 구슬에 불과해 보였다.
또다시 진주를 모아 쥐었다. 평범한 구슬 몇 개가 손바닥 위에 놓여있었다.
‘이 하찮은 것이 무엇이길래, 집착하고 있었던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진주의 실체를 그녀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인간의 몸에 걸쳐져야 빛나는 진주, 진주가 인간을 빛내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진주를 빛내 준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던 것이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서로 위로하며 그녀를 안아준 날, 사랑한다고 울부짖던 남편의 모습과 여자의 원룸으로 향하던 남편의 처진 어깨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녀는 자신의 이기심에 전율했다. 억제했던 분노가 쑥쑥 키를 키웠다. 분노를 제압할 수 없었다.
남편의 외출이 잦아질수록, 두툼한 돈 봉투를 기대하며 남편을 몰아냈던 이기심. 남편의 부재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손익 계산에 들떴던 자신을 향한 분노.
돈 봉투를 가져다줄 때마다 하나하나 진주를 꿰던 바늘은 그녀의 심장에 예리한 촉수를 박았던 것이다.
‘여자의 풍요로운 식탁에서 남편의 수저 소리를 완전히 되찾으려면 이제 남편을 버려야 하리라’
그녀는 진주를 모조리 검은 봉지에 담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