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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운 식탁 Nov 15. 2019

여보, 사랑해

 여보, 사랑해 

♧. 사랑      



 재취업의 희망이 멀어질수록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것에 모멸감을 느꼈다.     


흐느낌이 잦아들 즈음, 아내가 속삭였다. 

“여보 사랑해.”    



윤재는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우리 이혼하자.”

아내가 눈물을 훔치고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 울었냐는 듯 아내의 표정이 냉랭했다.     

“당신 이혼 안 한다고 했잖아. 왜 마음이 바뀐 거지?”

“당신한테 빌붙어 사는 게 싫어. 내가 장남인데 아버지를 언제까지 요양원에 모실 수도 없고….”     

“효자 났네, 효자 났어. 당신과 동생들이 공평하게 비용 내기로 했잖아. 왜 당신이 책임져야 하지?”

“장남이 책임져야지, 동생들이 무슨 죄야.”

“장남, 장남이 그렇게 대단해? 당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주제 파악 좀 해!”

“당신한테 빌붙어 사는 거, 이제 그만하고 싶다. 우리 이혼하자.”      


사실 이혼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재취업의 희망이 멀어질수록 아버지를 방치하는 것이 죄스러웠고,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것에 모멸감을 느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아내가 결심한 듯 물어왔다.     

“이혼하면 당신이 편안해질까?”

“그럴 것 같아.”

“그래, 그럼 이혼해.”     

아내는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 사이에 태초의 침묵 같은 고요가 흘렀다. 그 어떤 소음도 흘러들지 못하도록 완벽한 방음의 공간처럼 티끌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고요가 숨이 막혀 윤재는 긴 숨을 쉬었다. ‘휴’ 그의 숨소리가 일시에 고요를 날렸다.     

 

 아내가 고개를 획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도 아내를 바라봤다. 

슬프고 아픈 시선들이 부딪혀 고통의 물결이 휘몰아쳤다. 꾹꾹 눌러 참았던 통증이 아프고 뜨겁게 터져 나왔다. 둘은 동시에 울음을 터트렸다.    

  

아내를 품 안에 와락 끌어안았다. 아내의 아픈 감정이 물밀 듯이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슬프고 슬퍼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들은 울었다.      

흐느낌이 잦아들 즈음, 아내가 속삭였다. 

“여보 사랑해.”     


갑자기 눈앞이 노래지더니 싱그런 정원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수많은 노란 장미가 피어났다. 참으로 이상했다. 아내의 아픔과 그의 서러움을 공유했을 뿐인데, 아름다운 정원에서 감미로운 음악까지 흘러나왔다.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도, 장미꽃은 눈 속으로 들어와 향연을 벌였고,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아도, 감미로운 음악은 귀속으로 파고들어 감정을 자극했다.  

    

그는 속수무책 취했다. 그를 취하게 한 것이 장미인지, 음악인지, 아내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를 취하게 했다.      

그는 울었다. 아내는 울며 그에게 매달렸다. 그도 아내에게 매달렸다. 

슬픔 때문에 아내의 목소리가 자꾸만 떨렸다.      


역풍이 지나간 뒤의 침묵은 고요했다.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역풍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았다. 오로지 아내와 둘이서 광활한 공간에 버려진 것처럼.   

   

서로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듯, 그는 아내를 원했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게 다 사라져도 아내만은 오래도록 그와 함께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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