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식탁
♧. 아내의 식탁
“이놈의 여편네, 양말은 똑바로 뒤집어서 빨래통에 넣으라니까, 또 벗은 그대로 돌돌 말아 집어넣었네. 에잇, 들어오기만 해 봐라, 교육을 단단히 해야지 원! 아침드라마 시작할 시간인데, 또 늦겠군, 늦겠어.”
잔소리를 한 바가지 퍼붓고 TV 앞에 앉았다. 드라마는 막 시작 중이었다.
“저런, 저런. 시금치는 살짝 데쳐야지, 5분이나 삶았다고? 쯧쯧 도대체 살림은 어떻게 하는 거야?”
마치 자신에게 벌어진 일인 양 핏대를 세우며 드라마를 봤다. 아침드라마 시간은 왜 이리 짧냐고, 구시렁거리며 청소기를 돌렸다. 다된 빨래를 널고, 대충 점심을 한술 떴다.
아내는 점심을 먹었을까,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여보 점심은 먹었어? 설거지, 집 안 청소, 빨래, 모두 해 놨어. 집안일을 끝내고 나니, 당신이 보고 싶어. 오늘도 저녁은 나 혼자 먹어야겠지? ’ 문자를 썼다. 지웠다, 또 쓰고 지웠다.
윤재는 은밀하게 고백을 쏟아냈다.
“당신과 함께 자장면을 먹고, 공원을 거닐고, 시장을 가고… 영화를 보고 싶어. 당신과 함께… 여행을 가고, 어디든 함께 갈 거야. 당신이 나에게 앞치마를 두르게 한 것은 백수가 된 가장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는 거 알아, 알고 있다고. 앞치마를 두르지 않았으면 지금도 거리를 헤매며 일자리를 찾고 있겠지. 여보, 고마워.”
명예퇴직한 지, 7년 5개월 만에 윤재는 엄연한 직업이 있는 전업주부로 백수를 탈출했다.
“당신이 지켜낸 식탁은 이제 내가 잘 지켜낼게.”
휴대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겠어.”
아내의 전화였다. 아내가 일찍 퇴근한단다.
아내가 풍성하게 지켜왔던 식탁을 차려내기 위해 윤재는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향했다.
집을 나서자 환한 봄의 햇살이 빌라 계단에 머물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반찬을 만들까. 밑반찬으로 깻잎 김치와 지난 장날 하우스 열무로 담은 열무김치가 있고, 어제 만들었던 멸치볶음이 있으니까, 오늘은 콩나물 한 봉지를 사서 얼큰한 콩나물국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하며 건널목을 건넜다.
“콩나물과 찰떡궁합인 두부도 한 모 사서 구워야겠군.”
아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콩나물국을 얼큰하게 끓이고, 두부를 노랗게 구워 저녁을 차려냈다. 5대 영양소가 든, 완벽한 상차림이었다. 아내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내가 퇴근했다. 신발을 벗고 막 집안으로 들어서려는 아내를 막아서며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여보, 가슴 좀 열어봐 응?”
“민망하게 무슨 짓이야, 가슴을 열라니?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이랬으면 오죽이나 좋아! 흥, 다 늙어서 무슨! 피곤해, 저리 비켜!”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콧방귀를 흥하고 뀌었다.
“그게 아니고 여보, 우리 사진 한 장 박자 응?”
“참 낯간지럽게 사진은 뭐하러!”
"아까 시장 갔다가 사탕 한 봉지 사 왔거든. 내가 평생에 처음으로 주는 선물이야.”
아내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더니 현관에 걸려 있는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수줍게 사탕 봉지를 가슴에 안고 활짝 웃은 아내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윤재는 셀카봉에 휴대폰을 끼우고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찰깍, 가슴에 사탕 봉지 하나를 안은 여자와 앞치마를 두른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한 장의 사진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