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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 May 17. 2023

'내 집'에 대한 단상

'홈 스위트 홈'을 읽고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소설들이 묶여 나오는 소위 'ㅇㅇ문학상 작품집'을 해마다 사서 읽는 편이다.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인 척을 하고자 하는 점이 가장 크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들을 보며 위로를 받기 참 좋기 때문이다. 그 위로라는 것이 '아 살기 팍팍한 건 나 뿐만이 아니구나'하는 조금은 비겁한 종류일 때가 많긴 하지만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느낌은 어찌 되었든 잠깐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고는 한다.

몇해 전 내홍을 겪기는 했지만 '이상문학상 작품집'도 그 중 하나이다. 사놓고는 한참을 안 읽고 있다가 겨우 몇 페이지를 넘겨 올해 대상작인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 홈'을 읽기 시작했는데 단편 치고도 길지 않아 금새 다 읽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주거 혹은 주택에 대한 나의 생각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참 반가웠다. 전세사기와 그 피해자들의 사연이 연일 지면을 달구고 있는 요새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나 또한 전역 후 서울에 살던 8년여간 계속 전세집에 살았다.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이 부담스러웠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 고정 지출을 아껴 미래를 위해 사용해야만 한다는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큰 죄를 짓고 있거나 대단히 무책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물론 그 미래에 저당잡힌 현재가 자아내는 일들은 꽤 만만치 않았다. 등기부등본을 들춰봐야만 하는 불안, 1억이 넘는 돈을 들고 돌아다녀도 주차장을 개조한 가건물을 소개받아야 하는 낭패감, 계약이 끝날 무렵의 눈치싸움, 요새 그 금액으로는 어렵다는 난색에서 느끼는 나와 현실의 괴리 등 모든 것이 조금씩 나를 갉아댔다.




2019년, 지금 살고 있는 월세집을 처음 봤을 때는 그 오래된 외관에 조금 주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혼자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해방감과 나름대로 보완을 하여 외관에 비해 은근히 쾌적했던 실내가 나를 불필요한 비애감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 주었다. 광고에 나오는 아파트가 아니면 어떤가. 해가 좀 덜 들면 어떤가. 창틀이 오래되어 여닫기 힘들면 좀 어떤가. 나는 그런 집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왔고 그런 불편들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무 문제 없이 지속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집을 보러다니고 계약하는 것을 도와준 친구는 어머니가 보시고 우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청소를 도와주러 올라오신 어머니는 눈물은 커녕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을 참 맘에들어하셨다. 물론 나를 응원하고자 하신 말씀이실 수 있지만 요즈음도 종종 강화의 부동산 가격을 물어 오시는 것을 보면 은근히 진심인 모양이다. 친구의 걱정도 물론 이해하지만 아무래도 유전자의 힘이 조금 더 강한 것 같다.



집은 주거이자 자산이며 때로는 지위를 표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나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므로 이러한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형편 없을지 몰라도 비 새지 않는 지붕이 있고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으며 열린 창문으로 고양이가 배웅과 마중을 해주는 정도면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집의 역할로 족하다.


어느덧 지금 집에서 보내는 다섯번째 해가 되었다. 언제, 어떤 식으로 떠나게 될 지는 모르지만 제법 긴 시간동안 내가 기댈 수 있고 추위를 견디게 해주며 고양이, 새로운 사람, 다시 시작해가는 과정들을 함께해 준 파란 지붕의 낡은 집이 지금 나의 '홈 스위트 홈'이다. 기꺼이 이렇게 부를 수 있는 공간을 만났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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