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출과 음악의 관계로 종종 함께 작업을 했던 친구였다. 내가 얻은 실질적인(금전적인) 보상이 없어 배알이 좀 꼴리긴 했지만 영화들마다 결과가 꽤 좋아 '그래 나는 배를 곯지만 넌 네 길을 잘 걷는구나. 그걸로 됐어'라고 생각해왔던 녀석이다. 그에 대해 들은 건 대학원에 진학하여 찍은 영화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영화제에 진출했다는 이야기가 마지막이었는데 그나마도 배급사의 SNS를 통해서였다. 말하자면 '멀리서 응원할게' 류의 포지션에 있는, 그러니까 그렇게 막 죽고 못 사는 친구는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그런 친구는 이젠 잘 없기도 하고.
"그냥... 어떻게 사나 해서 전화해 봤어."
오랜만의 전화들이 예의 그렇지만 저렇게 포문을 연 친구에게 내 근황을 설명했다. 빌빌대면서 여러 사람 도움을 받아 간신히 졸업을 했고 어쩌다 보니 강화도에서 교사가 되었다고.
"야이 씨, 왜 이렇게 잘 살아! 좀 못살고 있는 놈 찾아서 위로받으려고 전화했더니."
'아니, 매일 야근에 보람은 없고 대학에서 배운 건 딱히 쓸모가 없는 데다가 불과 일 년 앞 계획도 세울 수 없는 파리 목숨 기간제 교원에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었다니!' 하고 좋은가 싶으면서도 '이 놈이 나를 '좀 못 살 것 같은'범주에 넣어 놓았다고...?' 하며 살짝 열이 받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살아왔던 게 사실인데 어쩌겠는가. 내보일 용기도 없는 주제에 뭔가 만들어 보겠다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가 어떻게 살아는 보겠다고 계획도 없이 떠다니던 중 겨우, 운 좋게 일자리를 구한 사람인데.
이래저래 기분이 복잡했지만 딱히 나쁘지도 않았다. 의심이 많으면서 뭔가 만들어 보려고 박박 기는 사람들이 사는 모양이라는 게 빤한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도, 알 필요도 없는 한심하고 지난한 일상의 반복인 것을. 남이 보면 혼자 일어났다가 혼자 자빠지는 걸 아주 좋아하는 이상한 놈들인 것을. 그렇게 생겨먹은 우리는 비록 표현이 좀 밉살스러워도, 그렇게 묘하게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는 한다. 평범한 걸 거부한답시고 스스로 외로워지는 걸 선택했으면서 맘 한 구석의 외로움과 조바심을 떨쳐내지 못하는 못난 사람들이라서.
"시바, 이제 카페에서 몇 천 원 가지고 고민 좀 그만하고 싶다."
같은 과를 다녔던 사람들에게는 뻔한 레파토리의 푸념이지만, 무거웠다. 가볍게 시작해놓고는, 반칙이었다. 멀리서 잘 되고 있는 줄만 알고 내심 부럽다고 생각해왔던 그가 여전히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사이즈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작은 걸로 주세요."
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 농담으로 뭉갤 수도 없지 않나. 조금만 더 버티면 되지 않겠냐고, 지금껏 잘 해오지 않았냐는 뻔한 위로 따위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다니 나쁜 놈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한참을 이어진 한탄은 한숨 비슷한 것과 함께 끝이 났고, 한 학기가 지나는 동안 그가 부러워했던 것과 다르게 나 역시 딱히 여유로운 몸과 마음과 잔고를 지닌 사람이 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 사이 그는 또 몇 개의 영화제에 진출했고, 이번에도 배급사의 SNS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오늘 밤에는 나도 녀석한테 전화를 해봐야겠다. 맨날 야근에 박봉에 시달리느라 기타도 얼마 못 치고 학기 초에 야심 차게 결제한 음향 프로그램은 얼마 들여다보지도 못했다고. 쥐며느리랑 그리마는 자꾸 나오고 여름엔 흰개미도 잔뜩 기어 나왔다고. 새로 영화를 본 게 언제인지, 역시 전공해봐야 졸업하면 아무 짝에도 소용없더라고. 빌빌 기더라도 음악을 계속 하거나 현장에 있었어야 했다고.
그러면 녀석이 몇 달 전 부렸던 투정은 온데간데없이 잘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줄 거다. 그럼 나는 '왜 이렇게 잘살고 있냐'는 부러움의 한탄을 한 껏 쏟아내야지. 그게 우리같이 못난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묘한 안부 인사니까. 그렇게 서로 잠시간은 버틸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