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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공의가 본 영화 <컨텍트>

운명에 직면 할 수 있는 용기

by 파랑고래

영화의 시작은 음산했다. 갑작스럽게 지구에 찾아온 거대한 외계 비행체들은 인류를 순식간에 혼란으로 내몰았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안전한 곳을 찾아 도시를 떠났다. 저명한 언어학자 이자 대학 교수인 주인공 루이스는 혼란에 동요하지 않고 기존의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영화는 예정된 수업 시간에 아무도 없는 강의실에 혼자 나타난 루이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루이스는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그녀는 꾸준히 평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지만, 그녀 역시 큰 혼란을 느낀다. 불현듯 암으로 죽은 딸의 기억들이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떠오른다. 외계인과의 교신을 시작하면서 그녀의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시간 순서에 맞지 않는 낯선 장면들이 갑작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이내 루이스는 이러한 장면이 외계인과의 소통을 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라는 것을 깨닫는다.


외계 생명체로부터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두꺼운 방호복을 껴입은 군인과 달리, 루이스는 진정한 소통은 벽이 없어야 한다며 방호복을 벗고 외계인에게 다가간다. 외계인에 대한 공포로 인류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외계인에 대한 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다. 죽음을 무릎 쓴 그녀의 용기와 동료 과학자 이안의 헌신 덕분에 결국 그녀는 외계인과 소통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동안 불현듯 떠올랐던 장면들이 그녀가 살아온 과거이자 살아갈 미래, 즉 그녀의 운명의 조각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딸을 잃은 아픔을 또다시 느낄 것을 각오하면서, 그녀는 미래와 과거의 남편인 이안과 사랑을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계속 나아가고, 외계인과의 소통을 위해 공포를 이겨내고 그들에게 나아간 것처럼, 그녀는 주어진 그녀의 운명으로 나아간다.


영화 내용이 '시간을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그저 하나의 축(axis) 일뿐이다'는 현대 물리학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이해하는데 다소 난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과학적 배경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나아갈 수 있는 그녀의 용기를 느끼는 것이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느끼는 우울감, 불안감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것이 많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맞이하는 것은 때때로 너무 무섭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피하고 싶은 마음이 지배할 때가 많다. 하지만 분명한 건 두 가지이다. 그 누구도 다가올 미래를 막을 수 없고, 또 그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그저 그 삶을 걸어가는 용기를 내보는 것이다. 아픈 결말을 알고 있는 그녀도 삶을 피하지 않았다. 예정된 비극 보다, 운명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그녀의 태도가 그녀에게 삶의 의미 부여하고 행복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우울감에 눌려 삶을 회피하고 싶다면, 삶을 향해 한걸음만 나아가 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그 작은 한 걸음이 예상보다 큰 위로와 용기를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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