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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공의가 본 <남한산성>

다양한 삶의 길.

by 파랑고래

넷플릭스에서 여러 영화들을 뒤적이다, 우연히 <남한산성>을 봤다.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청군에 침략에 의해 임금이 남한산성에 포위되고, 결국 항복을 하게 되는 병자호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한산성> 개봉 당시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시 마주하는 것이 꺼려져 관람하지 않았고 이후로도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넷플리스에 뜬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의 배우 분들이 한 장면에 담겨있는 영화포스터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배우들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혹독한 시대적 상황에서 각자의 삶의 길을 걸어가는 배우들의 고통과 한이, 화면을 너머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화는 고요했지만 그 속에는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처음으로 원작 소설을 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산성>은 워낙 유명한 소설이어서 그런지, 중고 서점에서 구입하기 어렵지 않았다. 소설가 김훈 작가님이 집필하신 <남한산성>은, 본인은 졸작이라고 하시지만, 내겐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작이었다. 김훈 작가님의 글을 항상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소설에서 작가는 각 인물들과 모두 동등하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아주 세심히 각 인물들을 관찰한다. 이를 바탕으로 각 개인들이 혹독한 남한산성의 겨울을 어떻게 관통해 가는지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각자의 신조를 지키며 자신이 세운 '말의 길'과 '삶의 길'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김상헌과 최명길. 스스로 '말의 길'을 고민한 적은 없으나, 조선의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만의 '삶의 길'을 묵묵히 살아가는 서날쇠. 말의 길과 삶의 길이 뒤섞여 중심을 잡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임금. 꽁꽁 언 겨울 땅을 뚫고 돋아나는 냉이처럼 억세게 살아가는 백성들.


그동안 병자호란은 단순히 명나라만 부르짖은 관료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생긴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한산성>을 읽고, 물론 소설이지만, 병자호란의 비극 속에는 다양하고 치열한 삶들이 담겨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청나라를 따르는 것은 자신의 삶의 길을 지탱해 온 의미와 이유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누군가에겐 치욕을 버티며 국가의 운명의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청나라든, 명나라든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은 것이 중요한 많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모두 소중한 삶이다. 모두 그 겨울 힘들고 아팠을 것이다.


역시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길처럼 삶을 단순하지 않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훈 작가님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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