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관한 고찰
'전공의가 본 세상만사' 집필을 시작하면서 정신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 문제 등에 대해서 부지런히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주 1회 정도 업로드 하면 적당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쉴 새 없이 정신의학 관련 이슈가 터지면서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큰 아픔이 잠재하고 있다는 반증인 것 같아 참 씁쓸하다.
김새론 님의 죽음과 관련하여, 많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셨다. 예일대 정신과 나종호 교수님께서는 개인의 재기를 허락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비판하기도 하셨다. 나는 김새론 님의 삶을 잘 모른다. 때문에 그녀의 구체적인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쉽게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만 김새론 님의 죽음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으로 의미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새론 님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접했을 때, 내 마음속에서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걱정과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삶의 벼랑 끝에 계신 누군가가 김새론 님의 행적을 따라가려 하시지 않을까. 실제로 유명인이 자살 이후에 며칠 동안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 분들의 수가 급증한다. 유명인을 따라 자살시도를 하시기 때문이다. 병동 내에 있는 환자분도 유명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신다며 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호소하시기도 한다. 마치 잔잔한 연못에 무심코 떨어진 돌이 연못 전체를 일렁이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사회적 너울'에 왜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시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의 부족이 중요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삶의 무게에 마음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여 기진맥진하신 많은 분들이 갑작스레 덮친 감정의 너울을 견디지 못하고 함께 떠내려 가시는 게 아닐지.
실제로 '마음의 에너지'는 한 개인의 '정신' 뿐만 아니라 '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울 및 불안감이 심하신 분들은 실제로 면역기능의 크게 저하되어 여러 질병들에 쉽게 노출된다. 반대로, 면역 시스템이 과항진 되어 면역 세포가 내 몸을 병원균으로 인식해 공격하기도 한다. 최근에 우울증과 무기력감이 심장질환, 치매 등의 발병위험을 높인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말 그대로 '나를 지키는 힘'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나를 지키는 힘'을 소진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무분별한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타인에 평가에 의해 감정과 생각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나와 상관없는 사람 일지라도, 나에 대한 비난은 내 마음에 상흔은 남긴다. 그 상흔을 꼭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많은 환자 분들이 여러 번, 그리고 깊게 베어버린 상흔으로 인해 버거워하시다 정신과의 문을 두드리신다.
김새론 님의 죽음의 주요한 원인으로 '악플'이 지목되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한 무자비한 비난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대한 충격은 마음을 넘어 인지도 덮쳐서, 항상 누군가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피해사고(persecutory ideation)가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악플의 근원에는 '분노'가 깔려있다. 분노는 사실 우리가 매우 신중히 다루어야 하는 감정이다.
우선 분노는 큰 무게를 가진 감정이다.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기 위해선 엄청난 에너지가 쓰인다. 팰컨 헤비(Falcon Heavy)와 같은 거대한 우주선을 우주로 발사하는데 무지막지한 연료가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거대한 우주선이 발사하며 엔진이 점화될 때, 그 엄청난 화염에 의해 발사대 주변이 모두 타서 검은 흔적이 남게 된다. 이처럼 강렬한 분노를 쏟아내는 과정에서 내 마음에 반드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우리 마음은 거대한 감정을 분출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쓰지만, 남아 있는 감정의 흔적을 처리하기 위해서도 그에 못지않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이처럼 분노를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큰 나의 에너지가 쓰인다. 때문에 분노를 발사하 가기 전, 목표 대상이 나의 마음 에너지를 투자할 만한 '가치'있는 대상인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또 한편으로 그 분노하는 것이 정말 '나를 위한 선택'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의 뇌는 이성이 생기기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존의 뇌'가 여전히 내재되어 있다. 생존의 뇌는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공격성을 원활하게 발휘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나를 위한 '건강한 분노'는 발사하고 처리할 비용도 덜 들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건강한 분노'를 발사하는 데 사용된 연료는 영양가 풍부한 거름이 되어 내 마음의 토양을 풍족하게 하기도 한다.
이와 반면, '그냥 이유 없이, 욕 한번 하고 싶어서' 순간적으로 폭발시킨 분노는 마음의 건강을 해치게 된다. 충분한 고민을 거치지 않은 단순한 감정을 배설은, 우리의 뇌가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는데 익숙하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개인은 많은 사회관계에서도 동일한 방식을 택함으로써 많은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반복된 갈등은 결국 나의 마음을 해치게 된다.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음주를 반복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내 간이 망가져 버린 것과 같은 원리이다.
무지성적인 악플을 쓰는 악플러에게 아마도 연예인은 마음 에너지를 써도 아깝지 않을 만큼 중요한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악플을 쓰는 행위는 나와 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건강한 분노의 표현도 아니다. 즉, 악플은 건강하지 않은 분노의 대표적인 예이다. 악플러들은 사실 나 자신을 해쳐가며 타인을 상처 내고 있는 중인 것이다. 나를 지키는 힘을 엄청나게 태우면서 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분노를 하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개개인의 마음속 에너지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귀하다. 많은 분들이 소중한 에너지를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보다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런 사회였다면 김새론 님 께서도 다른 선택을 하시지 않으셨을까.
하루하루 힘겹게 삶을 지켜내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많이 걱정되는 요즘이다. 오랜만에 영화 <아저씨>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