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정말 죄가 없다.
얼마 전 있어서는 안 되는 참혹한 일이 우리 사회에 발생했다. 한 여성 교사가 교내에서 학생에게 잔혹하게 흉기를 휘두르는 일이었다. 8살 한창 세상을 알아가던 호기심 많던 하늘이는, 이름처럼 '하늘'로 떠나갔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수많은 언론에서 일제히 해당 사건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사가 '우울증'으로 치료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걱정이 됐다. 이 모든 원인을 '우울증'의 탓으로, 더 나아가 '정신질환'의 탓으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정신질환 교사가 3살 아들 살해, 아버지 살해미수'
안타깝게도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교사의 또 다른 자극적인 범죄 행태가 연이어 보도되었다. 범죄분석가들이 방송에 출현하여 우울증과 범죄와의 연관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일대 정신건강의학과 나종호 교수님께서 '우울증은 죄가' 없다는 글을 급히 올리시며 진화에 나섰지만, '정신질환자 = 잠재적 범죄자'라는 프레임은 네이버 뉴스창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이 기자분들은 아실까. 본인들이 쓴 기사로 인해, 여러 고민 끝에 마음의 치료를 받고자, 어렵게 정신과의 문턱을 넘으려는 수많은 이들이 발길을 되돌리고 있다는 걸. 며칠이 지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교사의 직무를 강제로 정지할 수 있는 '하늘이 법'이 제정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학교에서 만나 뵀던 많은 교사 분들이 떠올랐다.
작년 연말, 나는 한 병원의 학교 방문 사업에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 참여했었다.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는 사업이었다. 사업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선생님들이 업무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매일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아무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아이.
자해 상처를 보이며 여러 번 상달실에 찾아왔지만, 부모님은 치료에 무관심하고 끝내 연락을 받지 않는 상황.
도움이 간절한 아이들의 아픔을 선생님들이 온전히 끌어안고 계셨다.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고 한 학교 상담선생님은 1000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컨설팅에 참여하신 선생님들은 누구보다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하지만 동시에 학생의 어려움 앞에서 선생님들은 좌절감을 느끼시며 점점 지쳐가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 많이 힘드시죠?"라고 묻는 질문에 많은 선생님들이 눈물을 보이셨다.
'하늘이 법'의 내용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어려운 교육 환경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를 하시다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분들은 꽤 있으실 텐데. '하늘이 법'은 어쩌면 마음속에 어려움이 있는 모든 선생님을 '예비 범죄자인 정신질환자'로 낙인을 찍어 버리는 건 아닐까.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지 못하시는 선생님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많은 학부모님들이 우리 아기에게도 끔찍한 일이 생길까 걱정하시는 마음도 충분히 공감이 된다. 하늘이를 살해한 교사를 변호할 생각도 전혀 없다. 응당 마땅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두려움을 동력 삼아 급하게 결정된 선택이 정말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길일까. '정신질환 교사를 배재'하는 것 만이 유일한 답일까.
중요한 건 '상황'을 이해하고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정신건강이 걱정된다면, 어떠한 요인이 선생님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지, 그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의 아픔에 온전히 함께 노출된 선생님들께 보다 안전하고 꾸준하게 버텨주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지루한 일이다. 하지만 하늘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하늘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늘이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며, 나종호 교수님의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가해자의 병력에 우울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원인이라고 추정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 있었다고 보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