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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무탈 Aug 20. 2020

엄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5. 엄마의 엄마 생각

"우리 엄마 어디 있어? 혹시 병원 갔어? 많이 아픈 건가?"


가장 마음이 아플 때는 엄마가 엄마의 엄마, 즉 외할머니를 찾을 때다. 외할머니는 엄마 열다섯 살 때 돌아가셨다. 60여 년 전 일인데 엄마는 아직 작별하지 못했다.  


아주 오래전 돌아가셨다고 돌려 돌려 설명하면, 눈물을 뚝뚝 흘리신다. 마치 처음 들은 얘기처럼 슬퍼할 때는 정말 아릿하다. 진짜 서러움이 전해지는 눈물이다. 엄마가 아직 필요한 나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엄마를 보내야 했던 10대 소녀가 보인다.

밀양 외할아버지 댁에서 결혼 직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일본에서 만난  분은 외할아버지의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했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유학하면서 독신으로  결심을 했다는데,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설명을 하면 엄마는 "엄마가 아팠는데, 우리 엄마, 그걸 난 잘 몰랐다"라고 한다. 나중에 셋째 이모한테 들은 얘기인데, 자존심 강했던 외할머니는 암을 숨기고 거의 혼자 치료를 받으셨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한 뒤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던 셋째 이모만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 큰 이모는 이미 결혼을 해 한참 육아에 힘들 때고, 약대 재학 중이던 둘째 이모도 학업에 과외에 한창 바쁠 때였다고 한다. 그래서 셋째 이모가 가족을 위해 희생을 많이 하셨다. 지나치게 착하신 셋째 이모는 최근에서야 그때의 어려움을 얘기해 주셨다.


가장 어렸던 엄마는 아마 외할머니가 그냥 좀 아픈가 보다 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 나이에 엄마가 위중했는지 모르다 갑자기 돌아가셨다면, 충격이 너무 커서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50대 초반(추정) 무렵 외할머니. 한 번도 뵙지 못했으니 정확하지 않지만, 큰 이모와 많이 닮으신 것 같다.

 

엄마가 자주 외할머니 얘기를 해 낡은 사진 몇 장을 찾아 디지털 수정을 의뢰하고 사본을 뽑았다. 엄마한테 보여주니 보자마자 단번에  "우리 엄마"라고 외쳤다. 어머니라는 존재, 어머니에 대한 사랑, 그건 아마 대부분의 인간이 가장 오래 붙잡는 기억이자 마음인 것 같다. 내 실존에, 생존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존재가 어머니다.


'동경 유학파'로 모교에서 교편도 잡으시고 종로에서 큰 타자 학원을 했다는 멋쟁이 외할머니 사진은 거의 남아있는 게 없어 아쉽다. 더 먼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도 그렇고.


두 분의 이야기는, 그 시절을 산 사람 중 누가 안 그럴까 싶지만, 한 편의 영화 같다. 진사 댁 애기씨가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신식 교육을 받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급기야 일본 유학까지 간다. 일본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와세다 대학 재학생으로 외할머니 만난 시절엔 이미 유부남. 이혼하고 와서 할머니 결혼 안 해주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해 곡절 끝에 결혼했는데,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이건 너무 심한 스토킹. 결국 결혼해 7남매를 낳았지만 할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 '모던 보이'로 멋 깨나 부리셨을 스타일로 추정.


엄마를 찾는 엄마를 보면서 나중에 난 또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할까 생각해본다. 난 감사하게도 울 엄마보다야 엄마와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그리움이 덜할 리 없다. 그러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돌보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매번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는 지금 꾀를 부리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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