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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Jan 04. 2024

집에서 구운 김

바람이 찬 오후, 아이들이 먹을 간식거리가 떨어졌다. 둘째가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 어서 다녀와야만 했기에 옷깃을 여미고 노란 카트를 끌고 집을 나섰다. 우리 아파트에선 걸어서 10분 거리의 홈플러스를 가거나, 5분 거리의 마트를 갈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걷고 싶거나 맥주를 사야 하면 홈플러스를 가지만, 급할 땐 가까운 마트를 선호한다.


마트 입구에 다다랐을 때다. 몹시 고소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내 또래의 이웃집 여성분이 서 있었다. 웃으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치려는데, 이거 맛 좀 보세요, 한다.


나는 입 안에 작은 김 조각을 집어넣고 마트 안으로 들어섰다.


이 맛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맛은 시중에 판매되는 조미김과는 다른 맛이다. 이건 직접 석쇠에 구운 맛이다. 석쇠에 김 한 장씩 올리고,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쳐서 구운 김이다.


나는 어릴 적, 엄마가 김을 굽는 모습을 지켜봤다. 엄마는 김을 정성스레 구워서 수북이 쌓았다. 먹을 때마다 잘라서 밥상에 올려주었다.


바람을 타고 전해온 참기름 향기와 고소하게 맴돌던 집에서 구웠던 김의 맛이 30여 년 전의 젊었던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으며, 나는 일곱 여덟 살 즈음이었을 거다.


불현듯,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 떠올랐다. 엄마가 아빠를 위해 손수 밀가루 반죽을 해서 만들어내던 칼국수도 떠올랐고. 꼬막을 깨끗이 씻어, 꼬막 하나하나에 양념장을 발라 내 숟가락 위에 얹어주던 것도.


그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날 마트에서 돌아오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음식 향기와 맛은 이토록이나 강하게 남아 세월이 흘러도 고유하게 간직될 수 있는 거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내 안의 한계와 마주쳤다. 나는 사랑이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내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이 넓다면, 그릇이 크다면 아이들에게 화를 덜 낼 텐데, 늘 자책했다. 구운 김 냄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단절의 시간이 길고도 깊었지만,


유년 시절의 너 또한 엄마의 깊은 사랑을 받았던 아이라고, 그러니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네 안에도 사랑이 넘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찾아보기로 했다. 지금은 까마득하게 잊고 살지만, 커오면서 나를 이루었던 내 곁의 사랑을, 나를 있는 그대로 아껴주었던 이들의 모습을 그려보기로, 증거를 하나하나 수집해 보기로,


말로 글로 표현해 보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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