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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Jan 11. 2024

세 개의 제리뽀

아이를 혼낸 후의 마음

육아를 하면서 감정적인 나와 이성적인 남편은 종종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의 행동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나와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남편, 그 사이에 있는 두 아이. 그러면 한 공간 속에서 나만 외톨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나만 엉망진창인 것 같았다. 화냈다가 미안했다가 혼자 울었다가, 나는 매일 이런 일을 반복했다.


 화를 내는 이유는 다양했다. 아이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집 밖을 나가서 내 손을 뿌리치고 앞뒤 안 보고 뛰다가 넘어져서 다치는 일, 차가 쌩쌩 오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일, 혹은 식당에서 시끄럽게 굴거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일, 계속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르고 보채는 일, 씻고 나와 몸을 닦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일, 머리를 말리자고 드라이기 들고 있으면 도망가는 일, 사소한 걸로 시비 걸고 남매 둘이서 싸우는 일, 기분 나쁘다고 발등으로 바닥을 쿵쿵 찍으며 걷는 일 등등,


두 아이는 나의 조급함과 참을성 없는 성격을 끊임없이 시험했다.


아이가 울면서 잠이 들면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고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일은 덜 혼내리라 다짐했다. 그래놓고 아침이 밝으면 다짐은 어디 가고 없었다. 화나고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매일 반복이 됐다. 그러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빠에 비하면 엄마는 엄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만, 엄마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다. 부모님은 나와 둘째를 함께 돌보는 게 힘들었는지 나 혼자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에 보내곤 했다. 어떨 땐 동생도 함께 보냈다.  


내가 유치원 가기 전의 일이다. 나는 할머니와 시골에서 몇 달을 보냈는데,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그때 내가 할머니 뒤에 슬그머니 숨었다고 한다. 엄마가 가자 해도 안 따라나섰다는 거다. 사실 이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없다. 이 장면을 전해주던 엄마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마치 내가 엄마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그 나이의 내가 그랬다면, 나 또한 엄마에게 엄청 서운한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나도 어린아이였는데, 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서 나만 먼 시골로 보냈으니까. 나는 종종 이 생각을 하면 서럽다.


세 살 터울인 우리 남매는 자라면서 많이도 싸웠다. 싸우면 고집 센 동생이 늘 이겼다. 그 당시 우리 집 분위기는 내가 누나니까 조금 더 양보하고 참아야만 했다.


한날은 동생과 싸우는데, 보다 못한 엄마가 둘을 불러서 혼을 냈다. 우리가 어떤 큰 잘못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빗자루를 가져와서  사정없이 나를 때렸다. 나는 잘못했다고 빌어서 끝이 났지만, 동생은 특유의 고집을 피우면서 끝까지 잘못했다고 하지 않아서 나보다 곱절로 더 맞았다. 동생이 울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자 엄마가 체념했다.


그날 우리 둘은 울면서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났는데, 우리 머리맡에 제리뽀 있는 거다. 비닐봉지를 뜯으면 세 개의 제리뽀가 들어 있는데, 사과맛, 포도맛, 귤맛 이런 식이었다. 나와 동생은 자고 일어나 엄마가 사 온 제리뽀를 먹으며 엄마에게 맞고 울었다는 사실을 금세 까먹었다. 어린 나이였어도 엄마 마음이 눈에 보였다.


아, 엄마는 우리를 때리고 울려서 마음이 아팠구나.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을 이렇게 대신하는구나.


나도 아이를 안아 재우면서 말하곤 했다.


엄마가 미안해, 너희들에게 화를 많이 냈지. 다른 식으로 엄마 마음을 표현했어야 하는 건데,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래....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오래 전의 엄마를 떠올려 보는 거였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을 텐데....


울고 잠든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옛날의 엄마 모습이 떠오르는 거다.


모든 형태의 불완전한 사랑,


완벽해질 수 없는 사랑,


그렇지만 아이들의 마음에 가닿고 싶은 사랑.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발견했던 제리뽀를 생각했다.


그것은 어떤 주문보다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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