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은율 Feb 08. 2024

당신이 떠났을 때,


결혼식을 앞두고, 할머니가 첫 손녀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두 달 정도 일찍 시골에서 내려오셨다.





할머니는 나를 붙잡고, 목 아래쪽에 담이 들린 듯 답답하다고 하셨다. 언제부터였냐고 여쭈었더니, 꽤 되었다고 하셨다. 밭에서 일할 때는 못 느끼다가 자려고 누우면 체한 듯, 혹은 담이 걸린 듯 결리다고 하셨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 뒤쯤, 숙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는데 동네 내과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고. 우리 집 근처에 대학병원이 있었고, 할머니는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다시 받았다. 그리고 바로 입원을 하셨다. 충청도로 이사를 가신 부모님도 내려오셨다.


아빠는 나를 붙잡고, 할머니가 폐암 말기라는 걸 알려주셨다. 할머니께는 직접 말할 때까지 알리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셨다. 아빠는 내 결혼식이 끝나고 난 후에, 말씀을 드릴 거라고 하셨다.


나는 버스를 타고 할머니를 만나러 대학병원으로 갔다.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큰 병 같다.  

-할머니, 괜찮으실 거래요. 나으실 거래요. 그러니 제 결혼식 보러 오셔야죠.


나는 애써 숨기면서 거짓으로 말했다.


할머니도 내 앞에서 그래야지, 하며 웃으셨다.


나의 결혼식 날, 모든 친척이 왔지만 우리 할머니만 못 오셨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바로 떠났다. 할머니와 영상 통화를 했다.


-할머니 저 다녀올게요! 다녀와서 할머니 보러 갈게요!


신혼여행 후, 바로 친정으로 갔다. 그때 할머니는 충청도 친정집 근처의 병원에 계신다고 했다. 할머니를 뵙고 내려가겠다고 하자, 아빠가 다음에 오라고 하셨다. 이제 막 출발하는 신혼부부에게 좋은 기운만 있으면 좋겠다고. 철없는 나는 그저 아빠의 뜻을 받아들이고, 할머니를 만나 뵙지 못하고, 신혼집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3월의 어느 날이었다.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나는 그 전화를 끊자마자 오열했다. 그리고 홀로 충청도로 올라갔다. 남편은 다음날 아버님을 모시고 함께 올라왔다.


할머니를 입관하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할 때, 할머니의 얼굴을 안으며 회환의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 사랑해요.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늘 한 장면이 맴돌았다.


할머니에게 싸늘한 표정을 짓던 나, 손녀에게 자신의 외로운 마음을 표현하던 할머니의 모습.


그 장면은 도돌이표처럼 언제나 돌고 돌아 내 마음속에 맺혔다.


장례식을 끝내고 신혼집으로 돌아와서, 어두컴컴한 동향집에서 하루종일 누워 있었다. 새벽같이 나간 남편이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올 때까지, 나는 거실에 누워, 인도 영화를 돌려보며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꼬박 한 달은 그렇게 울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아빠는 장례식장에서 본인 때문에 할머니가 암에 걸리신 것이라며 자책하시고, 고통스러워하셨다. 아빠 때문이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렸지만 나는 아빠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아빠 때문에 마음 아파하셨고, 나와 내 동생을 걱정하셨으니까.


아빠는 울면서 말씀하셨다.


-100세 시대인데, 이제 고작 일흔하고 조금 넘겼을 뿐인데,


할머니는 체념하듯 말씀하셨다고 한다.


-일흔 넷이면 살만큼 살았다. 아쉬울 것도 없다. 괜히 치료하고 수술하고 하면 돈 쓰고, 나도 힘들고, 서로 고생이니, 이만하면 됐다.


할머니는 한 줌의 재가 되셨다.


할머니의 49제 날, 할머니가 살던 곳, 아빠의 고향, 또 나의 유년의 일부가 남아 있던 옛 시골집을 함께 정리했다. 할머니가 없는 텅 빈 집은, 예전의 따뜻했던 느낌은 아니었지만,


눈이 가득 내린 마당에서 다리를 저는 할아버지와 눈 싸움 하던 기억이, 내 동생을 비롯해 사촌동생들이 차례로 마루에서 뛰다가 마당으로 떨어졌던 일, 상다리가 부러져라 음식을 차려대던 엄마나 숙모의 모습, 명절이면 다 함께 편을 나눠 윷놀이를 하고 웃음이 떠나지 않던 모습까지. 또 막내 삼촌이 오토바이를 몰다가 다쳐서 돌아왔던 기억과, 추운 겨울이면 아랫목 아궁이에 따뜻하게 불을 지펴서 엉덩이를 델 것 같은 느낌이, 홍시와 군밤과 군고구마와 함께 했던 길고 긴 겨울날이, 언제고 할머니와 하나의 기억처럼 엮여서 맴돌 것만 같았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면서 내게 금반지 하나를 남기셨다.


그건 오래전 엄마가 시집오면서 할머니께 드린 것과 할머니가 가진 것의 일부를 녹여 만든 반지였다. 할머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한 마음을 늘 갖고 계셨고, 그래서 그 반지를 내게 주고 싶어 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냄새가 그 반지를 받고 오래도록 울었다.


내게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할머니는.... 내게 엄마와도 같았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어느새 13년이 되었다. 결혼기념일 횟수와 같다. 아직도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죄송한 마음이 늘 앞선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은 사랑.


내가 어리석어 그렇다. 덜 어리석었다면 그전에 깨달았을 텐데......






이전 03화 할머니의 삼계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