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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Feb 15. 2024

영어만 하고 싶어

-영어에 대한 좋은 감정 혹은 부작용

대개 우리는 방학 동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을 중점적으로 해왔다. 독서 후 리뷰 쓰기, 영자 신문 스터디, 서술형 수학 문제 풀기 등.


그런데 이번 겨울 방학은 10일간 해외여행 다녀오느라 공부를 아예 하지 못했고, 이전에도 첫째가 피아노 콩쿠르 준비 때문에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계속 피아노 학원에 매여 있었다. 매일 하던 영어 원서 청독하기가 간헐적인 루틴으로 바뀌고, 영어 일기 쓰기, 영어 원서 리뷰 쓰기도 뜸해졌다. 그나마 유지한 것이 영자 신문 낭독하는 거였다.


다시, 봄방학이 시작되었고, 2주 넘는 시간 동안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영자 신문 스크랩하기!


아이들이 학원 가고 없는 시간에 조용히 NE Times를 읽어나가며 제일 마음에 드는 기사 하나를 골랐다. 오리고 붙이고, 단어 정리하고, 기사문을 꼼꼼하게 읽고, 읽은 걸 기억하며 스스로 요약하고 내 생각까지 적었다.


그날 밤, 두 아이 앞에 내가 직접 스크랩한 걸 보여주며 이런 방식으로 같이 해보자고 하자, 첫째의 반응이 좋았다. 첫째는 NE Times Kids, 둘째는 NE Times Kinder로 각자 마음에 드는 기사를 오리고 붙였다. 그리고 단어 정리까지 했다. 다음 날, 기사를 요약하고 자신의 생각 적기를 했다. 일곱 살인 둘째에겐 한글로 적어보자고 했다.

원래 계획은 일주일에 기사 한 개씩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자기는 매일 하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첫째는 매일 하고, 둘째는 틈날 때 조금씩 하기로 했다.


봄방학이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영어를 여러 분야로 나누어서 매일 할 수 있게 되었다.


1. 영어원서 청독 or 정독, 완독 후 리뷰 쓰기

2. 일주일에 한 번 영어일기 쓰기

3. 영자 신문 스크랩하기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

4. 매일 영어 문법 인강 듣기 (유튜브, 혼공샘 초등 문법), 약 15분 정도.

5. Insight Link (영어 독해) 1과 씩 하기.

6. 영자 신문 기사 낭독하기


이렇게 영어를 루틴화해서 지켜나가고 있는데, 아이는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다. 이 중,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있다면 영어원서 리뷰 쓰기 정도일 듯하다.


하지만, 영어만 할 수는 없기에 여기에 한글 독서 루틴과 수학을 매일 병행하려니, 아이는 버거워하는 거다. 특히, 수학에서....


수학도 영어처럼 세분화해서 연산, 3-2 복습, 4-1 예습, 플라토 도형. 이렇게 네 가지를 구분했는데 루틴 중 항상 마지막에 하는 게 수학이다.


아이는 가장 만만한 걸 제일 먼저 한다.


첫째 아이는 영어고, 둘째 아이는 수학이다.

자신이 자신 있는 일을 제일 먼저, 제일 많이 하는 거다.


첫째가 영어에 대한 감정이 좋은 건 고무적이긴 한데, 수학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너무 영어에만 신경 써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 거다.


영어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과 영어라도 하자라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이 와중에 한글 독서와 영어 독서 두 가지는 놓치기 싫다.


책을 좋아하고, 읽은 책은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내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오늘 자면서 나한테 얘기했다.


엄마, 내일 하루 수학 쉬면 안 될까?


수학은 매일 해야지, 했더니 아이가 이불을 덮어쓰고 운다.

안쓰러워서 달래며 그래 까짓것 하루 쉬자. 수학 하루 안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엄마는 수학보다 우리 딸이 더 소중해! 대신 내일 하루 만이야, 했더니 아이가 언제 울었나 싶을 정도로 해맑게 웃는다.


공부가 대체 뭐길래, 아이를 울고 웃게 하는 건가.


이제 고작 3학년인데, 아니 곧 4학년이 되는데.


나 또한 사교육의 열풍에 동조하고, 편승하는, 별반 다를 바 없는 공부 지상주의 엄마가 아닌가 싶다.


따로 사교육을 시키기 위해 학원에 보내지 않을 뿐이지, 집에서 하고 있는 건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아이의 공부 감정을 존중해 주는 '엄마표' 학습이 목적이었는데.


영어에서 비롯된 엄마표는, 화살표가 마구잡이로 이곳저곳으로 뻗어 나가, 지금은 갈 곳을 잃은 상태인 것 같다.


나는 지금 표류 중이다.


아이가 아닌 나에게 묻는다.


왜 아이의 공부에 집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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