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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Feb 07. 2024

영어만 한다고?

한글 독서에 열중하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영어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하루동안 영어 영상 한두 시간, 영어책 읽기 한 시간, 영어 일기 쓰기 혹은 어떤 식으로든 영어 '쓰기'에 신경을 잔뜩 쓰고 있었다. 아이가 여덟 살 때 영어에만 올인했다. 사실 첫째 1, 2학년 동안에는 학교에 거의 놀러 가는 느낌이었기에, 한글 일기만 매일 쓰도록 유도하고(지금까지 쓴 일기가 열세 권이다.), 한글 그림책 한 권씩은 무조건 읽자는 주의로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나는 점차 영어 독서력이 한글 독서력을 넘지 못한다는 말뜻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는 어휘력이 부족했다.


국어 독해 문제집을 풀다가, 엄마 이건 무슨 뜻이야? 하며 아주 쉬운 단어를 물어봤다. 또는, 단어 하나 때문에 국어 문장 전체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답을 적었다. 이 모든 게 영어에만 집중한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이 많았다.


수학이 제일 중요해. 특히, 연산은 매일 꼭 해야 해.

독서가 제일 중요해. 다른 건 안 해도 독서는 무조건 많이 해야 해.

영어는 그냥 학원 보내면 되지, 뭐 하려고 집에서 데리고 해. 영어는 학과목이야. 수능을 위해 준비하는 거야. 그게 가장 중요한데, 그걸 놓치면 영어 공부는 헛거야.


아이가 하고 있는 영어루틴에 하나씩 하나씩 보태기 시작했다.

수학 연산 1장, 예습 1장, 복습 1장. 다 합쳐서 하루에 수학 3장. 국어 독해 지문 1개 + 문제, 원서 청독, 한글 독서, 일기 쓰기(한글+영어), 독서록 쓰기, 영자 신문 낭독 및 쓰기.


문제는 3학년이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은 꽤나 깐깐하셨고, 숙제를 많이 내주셨다. 이미 하고 있는 일기, 독서록 쓰기였지만 그것이 숙제가 돼버리자, 아이는 선생님이 요구하는 패턴대로 움직였고, 원래 매일 쓰던 일기는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었다. 대신 독서록을 쓰는 횟수는 늘어났다. 숙제가 거의 매일 있었기에, 숙제에 집중하느라 집에서 하던 루틴을 빼먹는 날이 늘어났다. 게다가 첼로, 오케스트라 수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아이의 피로도는 높아졌다.


첼로, 오케스트라, 피아노, 태권도 이렇게 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는 계속 피곤하다며 기존에 해오던 루틴에 집중하지 못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아이와 나는 충돌했다. 나는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분노했으며, 마지막엔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그냥 애를 놔두라고 했다. 아직 열 살 밖에 안 된 아이에게 왜 많은 것을 시키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나는 왜 자꾸 아이에게 이것도 해야 한다, 저것도 해야 한다, 라고 의무감을 보태고 있는 걸까. 아이를 사랑한다면서 왜 자꾸 공부 공부 하게 된 걸까.


밤마다 아이를 재워놓고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누구를 위한 엄마표인가. 엄마를 위한 엄마표인가.


아이의 감정은 어디에 있는가?


매일 아침이면 나는 새로 태어나고자 했다.


친절한 엄마, 공부하라고 등 떠밀지 않는 엄마, 공부가 아니라 세상에 더 중요한 가치가 많다고 믿는 엄마. 하지만 저녁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부뿐이라고, 공부만 맹신하는 엄마가 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이 고백은 앞서 말한 즐겁게 해온 엄마표 영어와는 위배된다는 것을 잘 안다.


3학년 여름 방학을 기점으로 나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일부러 내려놓은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가 해오던 걸 대폭 줄였다.


아이에게 하나씩 물어보며, 벅차다고 하는 건 빼버렸다.


그 대신 한글 독서를 늘렸다. 영어 원서 읽는 양이 줄었다.


한글 독서량이 늘고, 한글로 쓰는 글이 많아지면서, 당연히 영어 읽기, 영어 쓰기 실력은 제자리에 맴돌거나 후퇴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내 느낌일 수도 있고 진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을 볼 일이 아니라 앞으로 십 년을 내다본다면 한글 독서에 더 치중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렇다고 아예 영어를 손놓겠다는 게 아니니까.


아이는 오늘 밤에도 책을 손에 들고 읽으며 잠이 들었다. 깔깔 웃으며.


자기 같은 캐릭터가 나오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에서 주인공이 했던 만행들을 으며, 즐거워하며 잠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재우고, 서재에 들어와 생각하는 것이다.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해, 하지만 내일은 또 한 단계 성장한 엄마가 되어 있고 싶어.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만 알아줘. 무엇이 너희에게 가장 좋은 건지, 매일 고민하고 찾고 있는 엄마라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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