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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Jan 16. 2024

원서 읽기에서 쓰기로

둘의 상호보완적인 관계

한국에 사는 동안 영어를 잘 말해야 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영어 관련 일을 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우리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영어를 공부한다.


만약 나와 아이가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집에서 영어 노출을 많이 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영어를 왜 해야 하지?라고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우리 집에서는 당연시된 문화가 되어버렸다. 그냥 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귀결되었다.


두 아이 모두 영어에 대해 감정이 좋은 편이다. 외국을 좋아한다. 외향적인 성향도 한몫하는 것이리라. 그렇다 보니, 나는 입시와는 별개로 영어를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은 입시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지인, 가족들과의 교류를 통해 깨달았다. 그들이 물어봤을 때 내가 쉽다고 알려준 방법들은 그들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음을. 그냥 틀어주면 돼. 영상 틀어주고, 영어책 읽어주고. 이렇게 툭 내뱉은 말들 속에는 나는 매일 이렇게 하고 있다,라는 '몹쓸' 자부심도 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럼 꼭 묻는 질문이 있다.


단어는 잘 외우냐, 단어 뜻을 일일이 알고 책을 읽는 거냐. 문장을 제대로 해석하냐.


나는 잘 묻지 않았고, 이해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양적으로 시간과 책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아이가 한글책 줄글을 읽기 시작하고, 줄거리를 말하고 쓸 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 때, 영어책의 summary를 시도했다. 아니면 반대이기도 했다. 영어 summary를 시도하고, 한글책 독서록을 적은 것 같기도. 사실 이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영어 일기 쓰다가 한글 일기 쓰다가, 어느 게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 병행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써놓은 리뷰를 읽어보면, 아이의 읽기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으며 어느 정도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따로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 혹여, 아이가 이해를 못 한 책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이해할 거기 때문에 다시 읽어라, 다시 써라 할 이유는 없었다. 대신 좀 더 쉬운 책을 권해서 아이의 자신감을 북돋아 줄 수는 있었다.


그럼 또 묻는다. 영어단어 철자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데 어떻게 쓰냐고.

 

아이가 열심히 적어온 걸 보면 뭘 쓰려고 한 건지 도저히 모르겠는 단어가 있다. 그럴 때 아이에게 읽어달라고 한 뒤, 정확한 단어로 고쳐주곤 했다. 틀렸다고 지적하진 않았다. 정확한 맞춤법을 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쓴 글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가 중요했다. "정말 잘 썼어! Excellent!" 아이는 나의 단 한 마디, 혹은 써주는 한 단어로 기뻐하며 다음의 글을 써오곤 했다.



누구보다도 엄마표 영어를 훌륭하게 이끌고 있는 인도에 사는 L언니, 언니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교육방식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비록 언니와 같을 순 없지만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이끌 수 있으리라 자신감을 주었다. L언니를 통해서 알게 된 유료 사이트 https://www.teacherspayteachers.com/ 는 writing을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까 고심하던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Magic tree house 전권과 An Elephant and Piggie Book 전권의 워크북을 구매해서 프린터 하고 제본했다. 아이에게 조금씩 들이밀었다. An Elephant and Pigge는 내용이 쉬워서 이해하기 좋았고, 그렇다 보니 쓰는 데도 덜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Magic tree house는 여덟 살 아이 수준에서 summary를 하는 게 어려웠다.


그 당시, 인스타에서 영어 쓰기 지도하는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온라인 수업을 신청했다. 아이는 4명이서 함께 6주간 일주일에 한 번씩 줌으로 수업을 들었는데, 매트하 5권을 다 읽고 과제를 해서 수업에 참여 하는 거였다.


기본 내용 파악 - 각 챕터별 줄거리 파악 - 어휘 찾기(어휘 뜻 영영사전 찾기) -캐릭터 파악 - 최종적으로 5권 내용 전체 요약하기. 그리고 마지막 주에는 그걸 바탕으로 혼자서 영어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께서 잘 이끌어주신 덕분에, 아이는 그 수업을 무사히 잘 끝냈다.

 



이후에 집에 있는 매트하 워크북을 몇 권 하긴 했지만, 전권을 다 하진 못했고, 바로 자유로운 글쓰기로 넘어갔다. 새벽달님이 안내해 주셔서 알게 된 이 활동지는 무료로 다운 가능하다. 이건 부담이 없는 게 읽기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아이 마음대로 이야기를 짓는 거였다. 아이는 책을 읽고 줄거리를 쓰는 것보다 마음대로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쓰는 걸 더 쉽다고 여겼다.


이런 창작의 시간을 거쳐, 지금은 읽기와 쓰기를 한 몸처럼 병행한다.


'읽은 건 무조건 리뷰를 남긴다'는 엄마의 방침 아래에, 때론 읽기만 하고 싶다고 투덜대기도 하지만 (그럴 땐 과감하게 패스해 주기), 대체로 즐겁게 남기고 있다. 내가 블로그에 리뷰를 쓰는 걸 보고는 자기도 블로그에 남기고 싶다 해서, 블로그를 하나 개설해 줬다. 그래서 틈틈이 한글책, 영어책 나눠서 리뷰를 남긴다. 줄거리를 적기도 하고, 자기 생각을 쓰기도 한다. 문법, 맞춤법 틀릴 때도 있지만 그냥 둔다.

 

직히, 한글 맞춤법도 틀릴 때가 많다. 이건 앞으로 계속 교정해 나가면 될 것이다.




이번주에 낭독에 대해 적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쓰기가 먼저 튀어나왔다. 낭독을 가볍게 하긴 했지만, 아이가 매일 의무적으로 낭독을 하게 된 건, 쓰기 이후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낭독은 다음 주에 다루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딱히 체계적인 순서랄 게 있는 건 아니다. 이게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 했고, 또 저게 필요하다 싶으면 그때그때 바로 끌어와서 했다. 좋아 보이는 건 다 시도해 봤다. 읽고 싶은 책은 바로 구매했으며, 재미있어 보이는 건 무료건 아니건 구해서 프린터 하고 따라 했다.


그 과정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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