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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Jan 10. 2024

'귀'가 먼저 트인 아이들

난 안 들려, 안 들린다고!

사실 언어의 습득이 어느 특정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듣고, 읽고, 말하고, 쓰고 이 모든 게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조금의 시차는 있겠지만. 물론 우리는 듣기를 가장 많이 한다. 과목으로서 영어를 먼저 접한 내게 영어란 읽기였다. 우리나라 수험생들의 영어는 모두 읽기로 시작해서 읽기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읽기 외의 다른 영역에는 모두 울렁증이 있었다. 아이들은 달랐다.


우선, 영상을 보더라도 영어 듣기가 시작이었으며, 글자를 몰라서 엄마의 목소리에 의존할 때도 귀에 닿는 소리가 먼저였다. 문제는 책 보다 영상이 더 강렬한 인식을 심어주기에, 책은 후순위로 밀려난다는 거였다. 실제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게임(모바일게임>닌텐도) > 영상>................. 책,


가장 압도적인 건 게임이다. 게임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무수한 훈련과 습관적인 반복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게임은 절대적이다. 책은 계속해서 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런 점에서 모든 미디어를 끊고, 한 시간 이상을 매일 책만 가지고 시간을 보낸 경험은 아이들이나 나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3년 정도 읽어줬다. 둘째가 한글책을 스스로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읽어주는 걸 멈추었다. 대신 아이들은 영어책을 오디오북과 함께 읽었다. 때때로 아이가 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하면 읽어주고, 의도적으로 글밥을 늘리고 싶어서 읽어준 책도 있다. 가령, <Wonder>의 한글 번역본 <아름다운 아이>는 책두께가 상당한데, 첫째는 두껍고 글자가 많은 책은 기겁을 하기에, 자기 전 몇 챕터씩 읽어주면 재미있다고 더 읽어달라고 했다.


첫째와 둘째의 성향과 기질이 다르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둘째는 책을 읽을 때 꼼꼼하게 읽고, 읽고 나서도 제법 잘 기억했지만 첫째는 그렇지 않았다. 대충 읽고, 빨리 읽고 덮어버렸다. 그런 첫째에게 가장 좋은 건 '듣기'였다. 지금도 첫째 아이는 읽는 것보다 오디오북을 듣는 걸 선호한다. 한 번은 나도 따라 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책 없이 영어 오디오북을 가만히 듣고만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무슨 말인지 100% 다 들을 수 없으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책을 펼쳐서 듣고 있으니, 읽어주는 성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몇 번이나 멈추어야 했다. 이를 통해 청독이 나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마다 다 다르구나.


특별히 발달되었거나 선호하는 부분이 있구나. 그 부분을 따라가게 만들어주자.


아이가 듣고 낭독했던 리더스북은 Robin Hill School The Complete Collection (로빈힐 스쿨 28권)이다.  첫째는 이 리더스북을 통해 문장과 어휘를 자연스레 익혔다. 그 외에 <Henry & Mudge>, <Annie & snowball>, <Mr. Putter & Tabby>를 읽어줬다. 이 세 리더스북은 신시아 라일런트가 쓴 것으로 서정적이면서도 다정한 내용이 주를 이뤄서 아이들이 좋아했다. 리더스북의 장점은 얇고 가볍고 그림이 예쁘고 짧지만 비슷한 문장구조가 자주 반복된다는 것이다. 시리즈를 다 읽고 나면 그 안에 든 어휘, 문장, 문화, 정서까지 두루두루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그 외에 다른 리더스북도 골고루 사모았지만, 나는 이 리더스북들이 가장 좋았다. 내 취향이 맞아야 읽어줄 재미가 있으므로 사실 책 선택은 내 취향이 우선이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아이들도 정말 자기 취향이 아니면 거부했고, 그러면 그 책은 제외시켰다.)



챕터북은 유명한 <Magic tree house>로 아이는 이 시리즈와 <Merlin> 시리즈를 거의 모두 청독했다. 특히 아이는 멀린 시리즈를 더 좋아했다. 첫째는 모험류를 좋아하는 성향이었다. 첫째는 8세 때 들여놓은 <좋은책어린이 저학년문고> 120권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이들의 일상생활과 정서를 다룬 이 전집은 아이의 관심 밖이었다. 쌍둥이책으로 <Magic tree house>의 번역본 <마법의 시간 여행>을 사서, 여름방학 동안 다 읽자고 했더니 열심히 읽었다. 원서와 한글책을 모두 읽은 첫째는 리딩게이트 워크북을 열심히 풀었다. 그걸로 포인트를 쌓아서 한 달 만에 천 점을 넘게 모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대박 난 책은 <My weird school> 시리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이 책을 모두 구해서 줬다. 내가 먼저 읽어보고 재미있다고 깔깔대고 웃으니, 궁금해하던 첫째가 읽고 빠져들었다. 첫째가 빠져서 거의 다 읽을 즈음, 둘째도 빠져들었다. 잘 때도 오디오북을 들으며 잤고, 일어나서 책을 펼쳐놓고 들었다. 둘째는 그림책, 리더스북, 챕터북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자유자재로 오갔다. <My weird school>  , <Magic tree house> 청독하다가 <Robin Hill school> 낭독했다가 그림책을 펼쳐서 그림만 보기도 했다가 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계획적으로, 순서대로 들이밀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지금은 그냥 아이가 내키면, 좋아하면 순서 상관없이 보도록 내버려 둔다. 하지만 그림책은 손이 덜 가는 모양이다. 책장 맨 아래쪽 두세 칸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그림책들이 아이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림책을 꺼내는 순간 아이들은 호기심을 보이며 달려온다. 한창 그림책을 모을 땐, 마법처럼 그림책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은 <You choose> 시리즈를 참 좋아했다. 읽었던 걸 계속 읽어달라 해서 나중에는 이 책이 너무 지겨웠다. 나는 <Black out>이란 책을 제일 좋아했다. 정전이 일어나면서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내용으로, 우리도 자발적으로 불을 끄고, 온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해 준 책이었다.


(책 소개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써보려고 한다.)

 

아무튼, '귀'로 시작한 독서는 지금도 우리 집에선 가장 중요하면서도 편한 독서방법이다.

(단점도 있다. 첫째가 한글책을 대충 읽고 넘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따로 집중적으로 훈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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