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교 시절 영어를 아예 못 하는 편은 아니었다. 과목으로서의 영어, 특히 리딩부분이 조금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영어회화 수업을 가면 한 마디도 못하거나 자신이 없는 상태였기에, 영어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
첫째가 두 돌 지나고 남편이 있는 인도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살면서 영어를 못해도 딱히 불편한 일은 별로 없었다. 단 두 가지만 빼고.
1.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2.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됐을 때.
이 상황에선 무조건 영어를 좀 더 깊이 있게 말할 수 있어야만 했다. 마트나 몰에서 주고받는 단순한 대화만으로는 답답했다.
영어 공부는 하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마음만 있는 상태였다. 그러는 동안,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차 한국의 친정집에 육 개월간 머물렀다. 태교 삼아 보기 시작했던 책이, 남수진(새벽달)의 《엄마표 영어 17년 보고서》와 서현주, 김린의 《Hello 베이비 Hi 맘》이었다. 새벽달 님의 책은 내게 보물이자,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둘째가 100일 즈음,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
인도의 우리 집에서는 거실에 TV가 달려 있었으나, 아무 채널이 나오지 않았다. 가끔 DVD로 영화를 보는 정도였다. 그래서 한국 영상물은 자연스럽게 끊었다.
주말이면 할 것도, 갈 곳도 없어서 몰을 자주 갔는데, 그때마다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했다. 어릴 때부터 서점 가는 걸 좋아했고 책을 모으며 즐거워했기에, 인도에서도 서점에 들러 원서를 사모았다. 꼭 필요한 책은 한국인들을 통해 중고로 구입했다.
아이와 집에 있으면서 내가 한 일은,
1. 영어 영상 보여주기
2. 영어 노래 틀어주기
3. 영어책 읽어주기
이 세 가지였다. 이때까지는 나도 깊이 있는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애들과 함께 있는 시간 중 일부를 영어에 할애하고 있었다.
이때는 아이들이 보는 책의 종류가 많지 않았다.
핑크퐁 마더구스, 노부영 JY First Readers와 Learn to Read. 이 세 종류의 책을 끊임없이 읽어주고 노래로 불러줬다.
나중에 첫째는 이 책 속의 문장들을 스스로 읽을 수 있었다. (많이 들어서 아예 외워버린 거였다.)
둘째는 그냥 엄마와 누나가 밤마다 책을 읽고 있으니, 곁에서 책을 넘기며 놀았다.
영어책만 읽어준 건 아니었다. 동시에 한글책도 계속 읽어줬다.
목이 아프고 귀찮은 날도 있었지만, 엄마 또! 또!라는 말에 힘을 냈다. 어떤 날은 읽어주지 않고, CD를 틀어주며 들려주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