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인 한승원작가가 물려주신 타자기는 한강작가에게 어떤 물건이었을까?
아버지가 소설가여서 책은 지천이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곤 했다. 10세 때 아버지가 안 쓰는 타자기를 주셨다. 자판의 ‘ㄱ’과 ‘ㅡ’와 ‘ㄹ’이 탁, 탁, 탁 소리를 명랑하게 내면서 ‘글’ 자가 만들어졌다.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좋았다. 아마도 작가로서의 운명의 울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가 한강 씨(46)의 유년기는 그랬다.
한승원 소설가는 “본질적으로 모든 예술가, 특히 작가는 혼자만의 세계를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직업이다”며 “강이는 밤이면 새벽까지 타자기 앞에 앉아 밤새 소설을 쓰는 나를 보면서 자랐다”고 했다.
-한강의 소설에서 아버지의 문학 유전자가 발견되는 대목이 있는가.?
"디스크로 허리가 아파서 앉아서 타자기를 쓸 수 없게 됐을 때 화가들이 쓰는 이젤을 의자 뒤편에 걸어놓고 갱지에다 연필로 초고를 써서 다시 타자기로 치는, 그렇게 누워서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 40대 후반에 일본 출판사와 계약한 소설을 그렇게 출간했는데, 작가가 얼마나 힘들게 작업하는지 보고 자란 강이에게도 그런 끈질긴 면이 있다. 주제 하나를 설정하면 철저하게 자료를 구하고, 나는 타협을 좀 잘하는 편인데 그 아이는 타협이라는 게 없다. 냉엄하다. 나에게도 냉엄한 그런 게 있는데 그런 면만 쏙 빼다가 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