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이번 에피소드에는 이탈리아 올리베티 Olivetti 社(이하 Olivetti)에서 제조한 레테라 Lettra 32(이하 Lettra 32) 타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타자기를 수집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꼭 하나 가지고 싶은 타자기 1순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꼭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타자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Lettra 32 하나는 가지고 싶어 할 것이다. Lettra 32는 전 세계적으로 롱런한 인기모델이다. 필자가 타자기를 수집하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Lettra 32의 세대별 모델의 히스토리를 살펴보고, 그 매력 포인트를 정리해 볼까 한다.
1960년대 올리베티 레테라 32 광고 포스터 출처. https://www.mynumi.net/
'편지'란 이름의 '타자기'
출처. 네이버 이탈리아어 사전
이 타자기의 이름인 'Lettera'는 이탈리아어로 '편지'를 의미한다. 필자는 이 타자기의 이름을 참 좋아한다. 작명부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전 세계가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으로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세계 어느 곳이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메신저를 통해서 상대방과 바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초연결시대를 살고 있다. 이 타자기가 출시된 1963년 당시만 해도 '서신' 書信 을 통한 소통방식이 흔한 시대였다. 유선 전화기도 사용되던 시대지만, 타자기를 활용한 문서작성이나 편지를 통한 소통이 활발했던 시대였으니 '편지'라는 이름의 타자기는 너무나 적절한 작명이었다고 생각한다. Lettera 32가 태어난 1963년 당시 서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서울뿐만 아니라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의 사진까지 함께 비교해 보니 그 당시 도시 발전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였다.
레테라 32가 출시된 1963년(계묘년) 뉴욕, 도쿄, 서울의 풍경 -출처. https://blog.naver.com/tiga1999/222990334508
Lettera 32의 고향인 이탈리아이브레아ivrea의 사진도 찾아보았다. 1963년도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사진은 이브레아의 올리베티 타자기공장의 전경(왼쪽)이고, 타자기 공장 내부의 모습(오른쪽)이다. 언제 사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런 멋진 공장이라면 필자도 가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1963년 당시의 한국의 물가는 어떠했을까? 궁금해졌다. 기본 식량인 쌀 한 가마(80kg) 값은 1963년 3천 원이었다. 한국인의 대중음식인 라면과 자장면의 가격을 보자. 1960년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은 15원이었고, 1963년 처음 등장한 삼양라면 가격은 10원이었다고 한다. 1965년 시내버스 요금은 8원이었다고 하니 라면가격이 그렇게 싼 가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Lettera 32가 출시된 1963년 당시의 판매가가 얼마였는지 정보를 찾지 못했으나, 1964년 미국에서 74달러(세금포함)에 판매되었다는 기록은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1달러 환율이 63원이었다고 하니 한국의 물가와 비교했을 때, 74달러면 4,662원이다. 쌀 한가마하고도 반가마는 더 살 수 있을 만큼 비싼 금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Lettera32의 주요 스펙을 살펴보자. Olivetti 社는 1949년에 마르첼로 니졸리 Marcello Nizzoli 가 디자인한 Lettera22가 성공한 뒤, 마르첼로 니졸리가 다시 후속작으로 디자인한 Lettera 32를 1963년도에 출시한다. 휴대용 수동 타자기인 만큼 13인치 x 12.2인치 x 3.5인치(33cm x 31cm x 9cm)의 크기에 5.9kg의 무게였다. 검색결과에 보면 간혹 무게가 4.1kg으로 더 가벼운 것도 보인다. 처음에는 사람들마다 무게를 측정하는 기준이 달라서 오는 오차로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오차라기보다는 바디 프레임이나 하우징 등 금속재의 두께 차이 때문에 오는 무게차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 근거는 뒤에 다시 설명하겠다. 자판의 배열은 QWERTY, QWERTZ, AZERTY 등 언어별 다양한 자판이 제공되었다. 자판의 구성은 총 43개의 타이핑 key와 Space Bar, Shift key 2개, Caps Lock key, Back Space key, Margin release key(여백 해제키), Tab key, tab-stop set/unset key 가 갖춰져 있다. 그리고 타자기 입문자들을 자주 당황시키는 부분이 있는데, 당시 출시되었던 영문타자기들의 대부분이 숫자 '1' key 가 없다. 이런 이유로 타자기 카페에는 입문자들의 질문이 간혹 올라오곤 한다.
사진 속의 자판을 보면,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는 당연히 숫자 2의 왼쪽에 숫자 1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자판을 보면 아무것도 표기가 되어 있지 않는 키가 하나 있다. 눌러보아도 뭔가 눌러지는 느낌이 없이 헐겁게 쑥 들어가 버린다. 도대체 이게 무슨 키이지? 숫자 '1' 키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나에게 드디어 Lettera 32 타자기가 생겼다며 기대에 부풀어 타자기를 꺼내었는데, 이런 상황에 직면한 입문자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필자도 그러했다. 일단 아무것도 표기가 없는 저 키의 정체부터 설명하자면, 저것은 'Margin release key'라고 한다. Olivetti 社의 타자기는 Margin release key를 항상 왼쪽 끝 상단에 빈칸으로 두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마진릴리즈 Margin release key는 여백 해제 키라고 하는데, 타자기에 종이를 넣고 글자가 인자되는 범위와 좌, 우로 여백을 설정하게 되는데, 타이핑을 하게 되면 캐리지가 왼쪽으로 한 칸씩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여백이 설정된 오른쪽 끝에 도달하게 되면 마진벨 소리가 "땡" 하면서 나고, 마진벨 소리가 난 후에 몇 칸 더 글자를 찍을 수 있는데, 이렇게 설정된 한계에 도달하면 더 이상 활자대가 '턱' 하고 걸리면서 타이핑이 더 이상 되지 않는다. 그럴 때 리턴레버를 밀어서 줄 바꿈을 해 줘야 하는데, 타이핑하던 글씨를 몇 글자만 더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때 Margin release key를 누르면 잠겨져 있던 캐리지가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몇 글자를 더 찍을 수 있게 된다.
※ Margin release key를 Olivetti에서 제공하는 공식매뉴얼에서는 Margin-release and paragraph-indentation key(여백해제 및 문단 들여 쓰기 키)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렇다면 숫자 '1'은 어디에?
사진에 연두색으로 표시된 동그라미를 보면 영문 자판에는 숫자 '1'을 대신해 영문 'L'의 소문자 'ㅣ'을 숫자 '1'과 대체하여 사용하고 있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대체 키를 활용해서 다른 키를 하나 더 쓸 수 있게 하기 위한 지혜라고 생각한다.
영문 자판에서는 알파벳 'L'의 소문자를 활용해서 숫자 '1'을 대체하여 썼지만, 한글 자판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때문에 한글 자판에서는 숫자키가 끝나는 마지막에 숫자 '1' 별도 들어가 있다. 기왕에 넣을 거면 순서대로 숫자 2 앞으로 배치하면 좋았을 것을 불편하게 왜? 마지막으로 배치하였는지는 필자도 아직 의문을 풀지 못했다.
Lettera 32는 1963년부터 이탈리아 이브레아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하여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거쳐 멕시코, 유고슬라비아 등지에서 1980년까지 생산되었다고 나온다. 시리얼 번호로만 미루어 짐작해도 전 세계에 수백만 대의 Lettera 32가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오랫동안 단일 모델명으로 롱런했다는 것인데, 이는 정말 대단한 기록이라 생각한다. 1959년 Olivetti는 미국의 Underwood의 경영권을 인수하여, Lettera 32가 출시된 1963년 10월 합병을 완료하며, 미국 뉴욕시에 Olivetti-Underwood 본사를 두고 전자계산기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Olivetti-Underwood라는 이름으로 타자기를 생산했는데, 기종에 따라 동일한 모델명을 쓰거나 다른 모델명을 쓴 것으로 안다. Lettera 32의 경우는 1980년대 스페인에서 생산된 휴대용 타자기까지 Olivetti-Underwood 라벨이 붙여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이브레아에서 생산을 시작했지만, 아마도 점차 생산단가의 절감문제로 인건비가 더욱 적게 드는 나라로 생산시설을 옮겨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같은 Lettera 32 라도 생산지역과 세대별로 제품의 품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Lettera 32에 빠지게 된다면 이런 히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해야 품질이 좋은 시기에 생산된 타자기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다행히 타자기 카페에서 이를 먼저 경험했거나, 학습했던 분들의 기록을 통해서 1세대 모델부터 Lettera 32를 수집할 수 있었다. 특히, 소설 로드(The Road, 2006)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유명 소설가 코맥 매카시 Cormac McCarthy의 일화는 Lettera 32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였다. 매카시는 Lettera 32 타자기로 주로 집필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는 1963년 전당포에서 50달러에 산 Lettera 32가 고장이 나서 더 사용할 수 없게 되자, 2006년 타자기를 경매로 내놓았고, 그 타자기는 약 30억에 가까운 금액으로 낙찰되었다고 한다. 그는 경매수익금을 비영리 과학연구기관인 Santa Fe Institute에 기부하고, 매카시는 그의 친구가 11달러를 주고 구입한 Lettera 32를 다시 선물 받았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참고하시기 바란다. 따라서 소위 '족보'라고 불리는 시리얼번호표를 참고하면 자신이 구매한 타자기의 생산연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TypewriterStory 닷컴 사이트와 Typewriterdatabase 사이트에서는 Lettera 32의 시리얼번호표를 제공하고 있다.
시리얼번호는 타자기를 구매하기 전에 확인을 할 수도 있지만, 구매 전에 확인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타자기에 붙어있는 라벨과 외장의 마감만 잘 확인해도 Lettera 32의 세대를 구분할 수 있다. 1세대부터 3세대까지 라벨의 디자인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라벨만 보아도 한눈에 대략 몇 세대인지 식별이 가능하다.
세대별 마감의 주요 차이
필자는 최근 온 집안이 타자기로 가득 차서 타자기 구입을 자제하고 있는데, 그 전만 해도 Lettera 32를 아마도 10대는 넘게 구입해서 쓰다가 팔고, 다시 다른 세대의 기종을 사고, 팔고를 반복하였다. 결국 지금 남은 Lettera 32는 한글, 영문을 포함해서 아마 5대 정도 되는 듯하다.(집안 곳곳에 처박혀 있어서 일일이 꺼내어 확인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범위를 Olivetti 社 타자기 전체로 본다면 아마 수 십 대는 될 듯 하나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아무튼, 세대별로 다양한 기종들을 탐구하다 보니, 이제는 사진으로만 봐도 타자기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타자기를 세대별로 구분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덕분에 타자기를 구매할 때 상태가 좋은 양품을 고를 수 있는 필자 나름의 안목도 생긴 듯하다. 그 안목을 만든 경험을 가지고 Lettera 32의 세대별 차이점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비교모델은 Lettera 32 1세대 모델과 3세대 모델 2종의 마감재 변화를 중심으로 비교하고자 한다. 이유는 더 극명한 차이를 볼 수 있어서이다. 2세대 모델까지 포함하여 3대를 동시에 비교하면 더 좋겠으나, 이는 나중에 추가적인 정리를 하려고 한다.(사실 지금 집안 깊숙이 쌓여 있는 2세대 Lettera 32를 꺼낼 수 없는 이유는 안 비밀이다) 1세대에서 3세대까지의 전반적인 변화의 총평이랄까? 핵심포인트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원가절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Lettera 32는 1세대부터 3세대 모델까지 지속적으로 원가절감을 해 나갔다.(이는 비단 Lettera 32 뿐만 아니라 거의 롱런한 타자기는 모두 다 해당할 것이다) 1세대 모델 출시 당시의 소비자가격과 3세대 모델의 소비자가격까지 비교를 해 봐야 더 명확해질것이다. 하지만 타자기의 세대별 소비자 가격까지 정보를 구할 수 없어서 이 글에서는 Lettera 32의 세대별 원감절감에 따른 마감재 변화를 중심으로 언급하려고 한다. 필자는 타자기 동호인 카페를 통한 사전 학습을 한 덕분에 Lettera 32의 경우는 1세대 모델에 일찌감치 관심을 가지고 수집을 시작하게 된다. Lettera 32 중에 한글 타자기 모델(두 벌 식과 네 벌식이 있다)이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 영문타자기를 개조하여 만든 것도 있으나, Olivetti 社에서 직접 제조한 한글 타자기 모델도 있다. 이것들이 대부분 197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이때 적용된 모델들이 3세대 Lettera 32였기 때문에, 필자도 Lettera 32 한글 네 벌식 타자기를 구입하면서, 3세대 모델을 접해 볼 수게 된 것일 뿐, 영문타자기는 대부분 1세대 모델 아니면, 초기 2세대 모델을 중심으로 수집하였다.
1세대 모델의 전면부 라벨 중 가장 처음 적용된 라벨에는 "Lettera 32"라는 모델명만 있다. 그래서인지 1세대 모델 중에는 후면 급지부에 제조사인 "Olivetti"의 라벨이 추가로 부착되어 있다. 이는 필자가 경험한 1세대 모델에만 적용이 되어 있는 특징이고 2세대와 3세대 모델에서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시각적인 디자인 면에서도 후면에 제조사 로고가 하나 더 있는 것이 보기에도 더 좋아 보인다. 급지가 되면 가려져서 안 보이지만 종이가 없을 때, 이 제조사 로고는 고급스러움을 더 해 주는 듯하다.
세대별로 변화를 거치면서 타자기 하우징의 도장 마감도 변해간다. (사진을 찍을 때 조명으로 인한 색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같은 그린계열의 컬러이고 비슷한 파스텔톤이지만, 도료와 도장방법의 차이 때문인지 실제로 보면 시각적으로나 손에서 느껴지는 타자기 표면의 질감이 세대별로 차이가 난다. 필자가 페인트 도장에 대한 지식까지 잘 아는 영역은 아니만, 질감을 통해 도장마감의 차이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각각 따로 본다면 그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고, 두 대 이상 직접 비교해서 보면, 그 질감이 주는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특히 3세대 모델의 경우는 도장면의 두께가 얇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분무 방식으로 도료가 두껍지 않고 얇게 발라진 느낌이 나고, 얇다 보니 도료의 색상과 밀도감에서 느껴지는 깊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활자집 커버를 보면 1세대부터 올리베티 특유의 문양 같은 로고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 로고 문양이 2세대 모델 중반을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 알게 된다. 더욱더 심플한 디자인 추구 때문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심증적으로는 원가절감이라고 느껴진다.
타자기 후면부에 있는 원산지 라벨도 세대별로 차이가 난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3세대 모델 중에는 "Made by Olivetti"만 표기되어 있고, 원산지 표기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라벨도 있는데, Lettera 32 한글 타자기의 경우도 그러하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Olivetti에서 OEM으로 생산된 모델에 부착한 라벨이 아닐까? 생각한다. 3세대로 넘어오면 캐리지 측면부에서도 마감재 변화를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1세대에서 2세대 중반까지는 캐리지 측면마감이 알루미늄인데, 2세대 후반부터 3세대까지는 검은색의 플라스틱으로 바뀐다. 이런 금속 부품들이 플라스틱으로 바뀌면서 타자기 자체 무게가 줄어든 것으로 짐작이 된다. 확실히 플라스틱으로 마감재가 바뀌면서 고급스러운 이미지에서 일반의 보급기의 느낌이 든다.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정말 티가 나지 않는 부분인데, 마진 설정을 하는 누름 버튼과 급지부의 눈금자마저도 1세대와 3세대를 보면 금속 재질이 차이가 난다. 분해해서 성분분석까지는 안 하더라도 육안으로 봐도 미세하게 눈금자 금속판의 두께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고, 마진설정 버튼부터 재질이 주는 물성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 두 개를 같이 두고 비교해 보면 느낄 수 있다. 그러니 한 대만으로는 절대 이 차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리턴 레버는 가장 눈에 쉽게 띄는 파츠이다. 1세대 모델부터 스페인 생산의 2세대 모델의 중반까지는 알루미늄 재질의 리턴레버가 적용되어 있다. 이 리턴레버가 주는 재질감은 타자기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매끈한 곡선에서 주변부가 반사되어 보이는 광택은 Lettera 32를 고를 때 꼭 챙겨보는 부분 중에 하나이다. 광택이 없는 것들은 구매 후 바로 광택부터 살려준다. 이 리턴레버의 광택감 하나로 소위 타자기의 '떼깔'이 달라진다. 그래서 필자는 한글 타자기를 제외하고 리턴레버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모델은 구매하지 않는다.
① 줄간격 조절레버(Line Space Selector Lever)의 경우는 1세대에서는 알루미늄 마감 위에 금속판에 숫자가 새겨진 표식이 붙여져 있는 방식에서 점차 원가절감으로 3세대에서는 플라스틱 금형 자체에 숫자 표시를 음각으로 뽑아서 부품을 하나 절감시키는 방식으로 바뀐다. ② 용지누름 롤러(Paper Bail Roller)도 1세대에서는 금속파츠에서 3세대로 가면 플라스틱 파츠로 바뀐다. ③ 리본 스풀 잠금쇠(Ribbon Spool Nut)의 경우도 1, 2세대까지는 리본스풀을 고정해 주는 너트 부품을 쓰다가, 3세대로 오면서 너트가 없는 디자인으로 설계가 바뀜으로 또 하나의 부품을 줄이게 된다.
④ 쉬프트 서포트(shift support)란 금속파츠 부분의 변경도 3세대로 내려가면 부품이 바뀐다. 정확한 부품의 명칭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Lettera32 리페어 매뉴얼에는 'support'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부품의 기능은 쉬프트 키를 누르고 타이핑을 할 때 세그먼트의 높이를 조절하는 서포트 부품인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이 금속파츠 변경의 이유가 원가절감을 위한 것인지, 기능개선의 목적인지는 알 수 없으므로 세대가 바뀌며 이런 부품의 변경이 있었다 정도로 참고하면 좋겠다.
활자집 커버를 열어서 측면을 관찰해 보면, 캐리지 잠금장치가 보인다.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차이가 보인다. 왼쪽 사진의 1세대 모델은 너트가 많이 사용된 반면, 오른쪽에 3세대 모델은 일자(—) 드라이버를 써야 하는 볼트로 대부분 변경이 되어 있다.
앞서 했었던, 활자집 커버에서 타자기 외장 하우징의 도료 색감이 세대별로 차이가 난다고 했는데, 자판에서 포인트컬러 역할을 하는 TAB(Tabulator) key 가 가진 빨간색의 발색도 1세대와 2세대까지는 정말 맑고 진한 빨간색인데, 3세대 자판을 보면, 뭔가 좀 채도가 떨어지면서 발색이 탁해진 느낌이 들어서 전 세대의 것보다는 그 강렬함이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앞에서 타자기의 무게 부분에서 언급한 대로, 1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가면서, 타자기 외장 하우징을 제작하는 다이캐스팅의 금속재료의 두께변화도 있었던 것 같다. 전체 무게를 정확하게 측정할 만한 저울이 없어서 활자집의 무게만 샘플링해 보았는데, 12g의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바디하우징의 무게도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세대부터 3세대까지의 변화와 차이점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글쓰기 기능이다. 타자기의 본분이자 고유기능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타건감은 타자기의 관리상태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1세대로 작성한 문서와 3세대로 작성한 문서의 질적 차이는 전혀 없다. 특히 취미생활로 타자기를 다루는 이들에게 1세대 모델이나 3세대 모델 중 어느 것을 쓰더라도, 타이핑 결과물의 차이는 없다는 말이다.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타자수만큼이나 타자기의 사용량이 많은 헤비유저의 경우 타자기의 내구성의 차이로 인한 고장은 생길 수 있다는 점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외에는 사용자 개인의 취향의 문제이라고 본다. 어쨌든 출시된 지 61년이 된 아름다운 타자기를 2024년에도 여전히 사용할 수 있음에 필자는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Lettera 32의 매력 분석
타자기의 성능도 중요한지만, 타자기의 가치는 제조사의 디자인 철학도 크게 한 몫한다고 생각하는데, 올리베티의 경영철학이나 디자인 철학을 조금만 검색해 보면, 단순하게 글 쓰는 기계만 열심히 공장에서 찍어내며 만든 회사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특히 1960년대 타자기 광고 포스터의 감각적인 디자인만 봐도 이 타자기를 쓸만한 가치를 충분히 증명하는 듯하다. 사람으로 생각하면 이미 환갑의 나이가 지난 Lettera 32 타자기가 아직까지 타자기 유저들의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 다면 정식 한글 자판 타자기의 존재, 디자인, 부드러운 터치감, 휴대성 이 4가지 정도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Lettera 32는 (필자의 추측이지만) 올리베티에 OEM으로 정식 생산된 한글 자판 타자기가 존재한다는 점은 큰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두 벌식과 네 벌식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공식으로 개조된 레테라 한글타자기도 있으나 국산 타자기가 아닌 외국제조사의 타자기 중에서 두 벌식과 네 벌식 타자기를 모두 보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타자기라는 점이다.
Lettera 32 두 벌식 타자기(왼쪽)와 네 벌식 타자기(오른쪽) _두벌식 사진제공 타사모 @노다
디자인, 부드러운 터치감, 휴대성
아티스트이자 산업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했던 마르첼로 니졸리가 디자인했다는자체만으로 Lettera 32의 디자인을 논할 이유가 있나 싶을 정도의 생각이 든다. 마르첼로 니졸리는 올리베티의 수석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올리베티를 디자인적으로 반석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하니 그의 업적을 생각한다면 디자인은 더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까 한다. Lettera 32의 터치감(혹은 타건감)은 대체적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부드럽다는 평을 많이 받는 편이다. 남성 유저들 중에서는 가볍다는 평도 있는 편이다. 이는 독일 올림피아의 SM9과의 비교에서 나온 평가이다. 필자 또한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 독일 타자기와 이탈리아 타자기는 각각 특유의 터치감을 가지고 있다. 독일 타자기가 남성적이라면, 이탈리아 타자기는 여성적인 감성이 느껴진다. 때문에 여성 유저들이라면 Lettera 32의 부드러운 타건감이 손가락에 큰 부담을 주지 않아 만족도가 높을 것이라 생각한다. 휴대성은 Lettera 32 도 나쁘지 않다. 더 작은 초소형 타자기도 있지만 Lettera 32 정도면 어디 여행 갈 때 함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반려 타자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도 실제로 캠핑이나 장기리 여행 때 타자기를 가지고 다닌다.
때로는 독이 되는 높은 선호도
Lettera 32 영문타자기는 국내 중고시장이나 해외 중고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Lettera 32 한글 타자기 모델은 중고시장에 나오는 개체 수는 희소한데 반해 수요자가 많아서 상태 좋은 타자기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때문에 일부 카페회원들 중에서는 중고나라에 Lettra 32 한글타자기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사진을 도용하는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더욱 대담하게 타자기 카페로 가입하여 회원 행세를 하면서 다른 회원들이 올린 사진을 도용하는 사례도 발생되고 있다. 따라서 중고거래 시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기종이 Lettra 32 한글 모델이기도 하다. 이는 그만큼 레테라 32 한글타자기의 인기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높은 인기와 선호도가 매력 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사기가 많아 주의를 각별히 기울여야 하는 리스크 많은 모델이기도 하다.
수줍은 듯한 마진벨
필자가 Lettra 32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서슴없이 마진벨 소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Lettra 32 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리베티 타자기 전반에 걸친 특징이다. 조금 더 크고 맑고 영롱한 소리를 원한다면 최고의 기술자를 만나 벨소리 개조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이 부분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타자기 케이스
올리베티는 타자기만큼 케이스 디자인도 신경을 많이 썼다. 과거 올리베티의 광고 포스터를 보면 오히려 타자기 케이스조차도 하나의 패션의 일부로 봤던 것 같다. 이쁘지만 관리가 힘든 지퍼 케이스는 1세대 사각케이스보다 이쁘기는 하지만, 이동성은 더 편안하다. 구찌와 콜라보로 만든 케이스는 정말 하나 정도 가지고 싶은 욕심이 났으나, 그림의 떡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포기한 이유는 가방의 관리문제가 걱정이라서 그렇다.
마지막으로 Lettera 32의총평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위에 소제목에 쓴 것처럼
"이태리 소녀와의 데이트 같은 감성의 타자기"라고 소개하고 싶다.
이 지구에는 너무도 좋은 타자기들이 많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타자기로 Lettera 32를 소개했는데, 앞으로 소개하고 싶은 타자기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아래 영상은 필자가 이 전에 촬영해 두었던, Lettera 32 한글 네 벌 식으로 타이핑했던 Lettera 32의 타이핑 영상이니 타이핑 소리도 함께 감상하면 좋을 듯하여 첨부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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