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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bella Hong 작가 Sep 25. 2021

1.부재중 전화

회사에서의 하루가 절반정도 지났을 즈음, 윗 반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이 반으로 들어와 나에게 손짓을 했다.


"Hey, Bell. Your turn."


내 점심시간인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써부터 배꼽시계가 배고프다고 야단을 떨어댔다.

출입카드를 찍고 텅빈 교사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아침에 충전기에 연결해 두었던 핸드폰이 파란 불을 반짝였다.


"연락올 데가 없는데..."


'부재중 전화 1통 발신자 불명'


발신자 불명이라...한국에서 국제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가족의 번호는 당연히 +82 한국 국가 번호로 시작하는 번호로 잘 저장 해 두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전화를 하면 모두 발신자 불명으로 떴다. 


'엄마가 또 내 출근일을 착각한 모양이네.'


평소에 종종 있는 일이었다. 

엄마는 가끔 먼 나라에 사는 큰 딸과 수다를 떨고 싶을 때면 전화를 하곤 하는데, 본인 딸의 일정한 근무일을 자주 혼동하곤 했다. 

나는 호주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작년부터는 건강이 나빠져서 일주일에 3일만 근무를 하는 부담임으로 일한다.

월, 화, 수 만 일하게 된지 벌써 10개월이 지나고 있었지만 엄마는 자꾸만 까먹고 아무 날에나 전화를 했다.


그렇지만 괜찮다. 또 어느 먼 사촌이 결혼을 했는데 알고보니 임신 5개월이였다거나, 옆집 고양이가 새끼를 10마리나 낳았거나, 아니면 교회의 어느 권사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내게 늘어놓고 싶은 것일 테니, 언제고 통화하면 될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피곤한 화요일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제일 많고, 그 주의 프로젝트 교육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나 역시 빨리 점심을 먹고 오후에 진행할 스토리 타임을 준비해야 한다. 


서둘러 냉장고에서 도시락을 꺼내 전자렌지에 넣었다. 오렌지 빛 불이 반짝이며 흰 쌀밥을 데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데 문득 한 달 전 일이 생각이 났다.


벌게진 얼굴로 핸드폰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나의 모습.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고.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서 전화하기 전까진 연락하지 말라고.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 때 엄마가 뭐라고 했더라...?

맞다. 엄마가 사과를 했었다. 지난 날 자신의 실수들을. 

이제는 너무 오래지나 돌이키기엔 너무나도 늦은 그 잘못들을. 


'미안해,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우리 딸.

 기다릴께. 네가전화 줄 때까지. 

 밥 잘 챙겨먹고. 잘 살고 있어.'


그랬다. 한 달 전 나의 일방적인 요구로 엄마와 나는 연락을 단절한 상태였다.

나는 서둘러 다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이번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카톡 대화창을 열었다.

역시, 오늘 새벽시간으로 엄마의 카톡메세지가 하나 와 있었다.


'우리 딸, 엄마가 할 말이 있는데, 오늘 전화 줄 수 있겠니?'


나는 그 메세지를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원인 모를 불안함이 스믈스믈 내 몸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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