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이 시작되다.
결과론을 항상 경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했던 불행한 일이 벌어지면 누구나 책임소재를 따지게 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다가 "그래서 누가 제일 잘못한 거야?"로 귀결되는, 뻔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우리 집에서도 어김없이 일어났다. 과거에 비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투병하는 이들이 주변에 흔해지면서 이런 일이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었다. 닥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게 어리석은 건 맞지만 막상 닥치면 당황스러운 것 또한 피할 수 없다. 미리 걱정해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지만…
나는 ‘설마 우리 집에…’라는 생각으로 이미 우리 집을 성역시 하고 그런 일이 발생하는 다른 집을 이상한 곳으로 폄훼하는 편견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일이 우리 집에 일어나는 순간 처음의 반응은 이렇다. "맞아, 우울증은 요즘 흔한 일이잖아. 우리가 뭔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닐 거야…" 아이가 병원에 가고 싶다 했을 때 말리려 노력했던 이유는 아이에게 찍힐 낙인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그 화살이 내게 돌아올 것을 의식했던 것이기도 했다.
내 잘못을 인정했다기보다는 누가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제3자에게 평가받게 되는 사실이 불쾌했다. 그들이 아무리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문제의 핵심을 진단하지 못하리라는 불신과 더불어 불편한 진실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다소 작위적인 왜곡이 발생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지울 수 없었다. 가족의 은밀한 사생활이 과연 어떻게 객관화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우려가 교차했지만 결국엔 상담치료와 대화를 통해 마녀사냥으로 연결되는 현실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첫 번째 가해자그룹은 학교에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단적으로 그리고 악의적으로 아이를 괴롭힌 아이들이 세명 정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주도적이었던 한 아이가 5학년때 다시 같은 반이 되었고 아이의 고달픈 학교생활이 반복되었다. 내가 대강의 정황을 인지한 것은 3학년때였지만 아이의 이야기만으로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역시나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유난히 아이들을 방치하여 다음 해 담임배정을 받지 못했던 젊은 여성이 담임선생님이었다는 것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아이가 두 번째로 괴롭힘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고 무언가 조치를 요구했던 5학년때에도 역시 나는 아이와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서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아이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때마침 억울하게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큰아이의 누명을 벗겨주느라 학교와 힘겨운 싸움을 하던 때였다. 아들은 누나의 억울함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아빠를 보며 용기를 내었지만 케이스가 다르기도 했을뿐더러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는 학교폭력위원회의 실상을 경험했기에 다시 그 끔찍한 투쟁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역시나 이때의 책임도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두 번째 가해자 그룹은 어김없이 가족이었다. 나의 아이는 예민함과 엉뚱함 그리고 충동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다는 걸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고 초등학교 2학년 때 ADHD 판정을 받았다. 아이는 과잉행동장애가 없는 주의력결핍장애였다. 그래서 ADD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단순히 주의력 결핍장애나 성인에게도 ADHD가 있다는 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주의가 산만하고 장난기가 심해서 가끔 대형사고를 치기도 하는 남자아이들에게나 붙이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래서 놀랍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 장애가 아이를 우울증으로 쉽게 진화시킨다는 사실도 우울증 판정을 받은 병원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저 주의력결핍이 학업에 미치는 영향만을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대인관계에서도 크게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우린 뒤늦게 깨달았고 그로 인해 아이가 초등학교 내내 학교생활에 힘겨웠다는 것을 놓쳤다. 역시나 부모의 주의력 결핍(?)이 더 큰 문제였다. 아내는 아이와 유사하게 주의력 결핍이 있는 편이었고 뒤늦게 성인 ADHD 경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민하지만 주의력이 떨어지는 아들과 둔감하면서 주의력이 부족한 아내는 여러 가지로 불협화음이 심했다. 예민하고 주의력도 높은 나는 그걸 또 간과했다.
큰 아이도 마녀사냥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아이는 누나에 대한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깊었다. 아이는 이 단어를 쓰는 것에 당연히 반발하였고 사실은 부모의 차별과 편애라고 봐야 하는 측면도 있었다. 나와 아내는 차별과 편애라는 말에 발끈했지만 아들이 피해의식과 열등감이라는 표현에 느끼는 거부감과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똑똑하고 여러모로 탁월했던 큰애를 편애했다.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수긍할 수도 없었다. 아들은 양성평등이라는 간판을 달고 벌어지는 페미니즘에 혐오하는 남자아이들의 정서에 공감했고 나는 대한민국의 핍박받아온 여성들의 그림자를 내 딸에게 드리우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내 아들이 상처받았음을 나는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