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온 이유

그걸 알았으면 애초에 이런 일도 없다?

by 낙산우공

왜 이 지경에 이른 걸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개 이런 상태까지 왔다면 분명 치유되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누적되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그걸 깨달아가는 과정도 지난했으며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나는 온전히 현실을 파악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완벽하게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아무리 과학적인 정신의학의 세계에서도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한 상처와 갈등을 진단하고 규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꽤 설득력 있는 분석을 해낼 수 있고 병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지언정 말이다. 완전한 복구란 있을 수 없으며 상처는 고스란히 가족 모두에게 전이되었다.


그리하여 여전히 힘겹고 걱정스러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7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증상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하루도 마음 편히 넘어간 날이 없었다는 점에선 일관성이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가장 힘든 건 당사자였다. 통제하지 못하는 우울감과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분노 그리고 이어지는 공황발작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하는 심정은 겪어본 이들만이 알 것이다.


처음엔 자책과 반성의 시간이었다. 유난히 손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어려서부터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스스로를 부정해 보아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온 20여 년 동안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이 번만큼은 정말 역대급이었다. 나는 날마다 무력감에 시달렸다.


지금까지 다양한 심리검사와 상담을 통해 짐작되는 것들이라고 하면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는 것, 그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중학교 3년간 스스로 대인관계를 극단적으로 자제해 온 것, 특히 3학년때 미술 예고입시를 준비하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되었고 다행히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여 조금 반전의 계기가 되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다시 숨 막히는 경쟁환경에 노출되면서 누적된 피로감으로 번아웃이 찾아와 우울증을 동반하게 된 것 정도다. 아이는 고등학교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적극적인 교우관계를 맺었으나 과거의 기억이 발목을 잡아 PTSD를 겪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부모 모두 우울증 인자를 지니고 있다고 하니 선천적으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았던 것이고 후천적으로 외부 환경이 아이의 스트레스를 증폭시키면서 양자가 상승 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나를 가장 자책하게 만든 것은 다양한 계기를 통해 이런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걸 예측할 수 있었는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처럼 붕괴되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무너졌고 깨어졌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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