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된 학폭을 누가 단죄할 수 있을까?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인 단어로 그리고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최근 모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등쌀(?)에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 교권과 학생인권이라는 양날의 검이 마녀사냥 하듯 서로를 부정하며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보면서, 사건만 터지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여론을 선동하는 언론의 상업성에만 책임을 전가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형태의 폭력 사건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 집에서도 학교폭력은 비켜가지 않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몹쓸 상황들에 휩쓸렸고 내 아이들이 한 녀석은 가해행위 없는 가해자로, 또 한 녀석은 피해보상 없는 피해자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노출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끔찍한 기억이다. 특히 둘째 아이가 겪은 피해 경험은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지금도 정상적인 삶을 방해받고 있다.
공교육의 현장에 만연한 학교폭력의 다양한 유형과 성격을 이젠 분류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갈수록 교묘하고 지능화되는 폭력행위와 그것을 쟁점화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놓는 일이 전문가의 영역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정녕 공교육의 순기능은 무너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할 만큼 학교는 더 이상 아이를 보호해 줄 수 없다. 그 책임을 온전히 학교에 물을 수도 없다.
나의 첫째 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학폭사건에 연루되었다. 타고난 모범생이었고 당시에 반장을 맡고 있던 딸아이가 이런 일에 엮이리라고는 사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나의 어리석음과 불찰의 결과였다. 나의 기준에서 사소함이란 결코 학교폭력 사안에서 그렇지 않았다. 아이가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사건은 이랬다.
딸아이는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조별과제로 수행하는 UCC 동영상 제작의 촬영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을 맡은 아이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반복해서 NG를 내자 불만이 쌓여있던 연출 담당 아이가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병O같이 그것도 못하냐”
상처를 받은 주인공은 조원 전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였고 우리 아이는 연출이 욕을 하는 순간을 막지 못한 죄(?)로 가해자로 분류되었다. 평소 주인공 아이와 관계가 좋았던 우리 딸은 바로 다음날 손편지를 전하고 연출 아이를 대신하여 사과하였으나 끝끝내 학교폭력위원회에 가해자로 출두하는 굴욕을 겪었다.
내 아이가 작위(직간접적인 폭행) 또는 부작위(폭행방조)를 막론하고 특정될 만한 가해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학폭위에 출석하여 당시의 상황을 해명해야 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학교의 방관에 있었다. 학교는 학폭신고가 접수되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제3자의 위치에서 행정처리에만 집중한다. 피해학생이나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측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학교는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여 폭력행위의 진위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결정을 위원회에 일임한다.
그 바람에 우리 아이는 사안조사 과정에서 당연히 가해학생에서 제외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해학생의 악의적인 허위 지목에 의해 학폭 가해자로 분류된 것이다. 따라서 학폭위에서는 우리 아이에게 해명을 요구할 가해행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결과는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는 것으로 조치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 아이가 아무 잘못 없이 학폭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고 심지어 법정 같은 학폭위에 피의자처럼 가해학생으로 분류되어 출두했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나는 처음에 이 사안이 학폭위까지 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들 간의 다툼이었기에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친구들과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내 아이를 먼저 혼냈고 담임선생님께도 사과했다. 그런데 사건은 내 기대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학교는 처참하게 무력했다.
나는 사안이 어이없게 흘러가는 것을 뒤늦게 인지하였고, 교육청의 관련규정을 이 잡듯이 뒤져서 학폭사건 처리과정에서 학교의 명백한 잘못을 찾아내었다. 나의 반격에 학교는 업무처리의 과오를 인정했지만 이미 학폭위에 회부된 내 아이를 구제해주진 못했다. 모든 사건처리가 조치 없음으로 끝난 후에도 아이는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지 못했고, 나는 교장선생님께 공손한 표현으로 완곡하게 문제점을 지적하는 편지를 보냈다.
나는 편지를 읽은 학교장의 면담요청에 응해 학교 측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았다. 해당 학교는 바로 학교 규정을 개정하여 혐의 없이 억울하게 학폭위에 신고된 학생에 대하여 직권으로 가해학생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쓰라린 경험을 고작 열다섯에 겪고야 말았고, 우리 아이를 학폭 가해자로 지명한 아이를 끝내 용서하지 못했다. 다만 그 아이를 똑같이 허위 신고에 따른 학폭 가해자로 신고하는 짓만큼은 하지 않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게 아이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살면서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세상은 그들의 억울함을 구제해 줄 다양한 제도적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 일에 연루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혹시라도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너의 억울함을 헤소해야 한다.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탓하기 전에 너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고…
이런 내 얘기가 아이의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풀어주지 못했지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위해 학교를 상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다. 나는 학폭 처리과정에서 학교의 실수를 밝혀냈고, 학폭위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학폭위 출석을 통해 행여라도 위원회 결정에 오류가 없도록 아이를 변호했다. 사건처리가 종결되고서는 학교장에게 공식적인 항의서신을 보내 사과를 받아냈다. 그런데 몇 년 뒤 둘째의 일을 알게 되면서 나의 모든 신념체계가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는 경험을 했다. 그 이야기를 이제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