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을 넘기까지-1

우울증에 쉽게 걸리는 아이는 없다.

by 낙산우공

나의 둘째 아이가 학교폭력에 노출되고 보낸 은둔의 시간은 약 7년이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아이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탓을 한다면 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아이의 호소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행동과 감정의 변화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울증이라는 병에 그리고 PTSD(외상 후스트레스장애)라는 증상에 무지하였고 그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하는지 짐작조차 못했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정리할 생각이고 여기서는 아이의 병이 어떻게 발단이 되었는지 짚어 보고자 한다. 우울증은 쉽게 걸리는 병이 아니다. 그만한 사연이 우리 아이에게는 충분히 있었고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갔기에 몹쓸 병에 걸린 거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의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이들의 집단적인 따돌림과 괴롭힘(폭행을 동반한)을 받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없고 변죽이 좋아 사람들과 쉽게 어울렸는데 이때부터 점차 낯을 가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시 괴롭힘이 시작된 5학년 이후 아이는 마음의 문을 많이 닫아 버렸다. 6학년 때 아빠와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나는 제 누나처럼 사춘기가 조금 일찍 시작되었다고 지레짐작을 해버렸다. 알고 보니 누나의 예고 입시가 본격화되었던 시기에 상대적으로 부모의 관심이 소홀해졌고 그게 아이의 상처를 덧나게 했던 거였다.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멀리 이사를 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대충 알았지만 아이의 학폭 피해가 그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던 나는 낯가림이 심해진 아이가 아는 친구 한 명 없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나는 참으로 한심하기가 그지없는 부모였다. 여러 가지로 이사할 형편이 아니었던 것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나를 부추겼을 것이다. 정말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 나는 단언컨대 부모로서 낙제다.


아이는 중학교 3년 내내 철저하게 스스로를 보호했다. 그 학교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었고 우리 아이는 이미 두 차례의 집단 따돌림 덕분에 학교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이미지가 박혀버린 아이는 중학교에서도 힘을 쓸 수 없었고 그런 현실에 대응하고자 학교 내에서 은둔자가 된 것이다. 친구를 최소한으로만 사귀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는 3년 내내 출석부 담당을 자원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리고 출석부를 핑계로 수시로 교무실을 들락거린 덕에 아이들을 멀리 하는 대신에 선생님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 또한 학교 내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고 아이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나름의 치밀한 전략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아이는 학교에서의 대인관계에 극도로 예민해진 탓에 학업에 쏟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학교에만 다녀오면 지쳐서 쓰러졌고 침대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게으르다고 생각했고 이 문제로 아이와 잦은 언쟁을 벌였다. 나는 가뜩이나 힘든 아이를 오해하고 비난하며 괴롭혔다. 나 역시 아이에겐 빼놓을 수 없는 분명한 가해자였다.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위클래스 상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담실을 잘못 찾아가 엉뚱하게 진로상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 진로상담 선생님(나이 지긋하신 남자선생님)께서 아이의 힘든 상황을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본인이 주도하는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주셨다. 그렇게 3년 동안 아이는 진로상담 선생님과 주 2회 이상 명상을 함께 하고 차를 마셨다. 지금도 아이의 우울증을 가장 걱정하고 염려하시는 분이다.


돌이켜 보면 아이의 중학교 시절에 내가 끔찍하게 잘못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아이의 상황에 대한 나의 뿌리 깊은 오해가 불러온 일이었고 나는 최근까지 그게 내 잘못인지 조차 깨닫지 못했다. 나는 누구보다 자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각별하다고 자부했고 그 착각이 아이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 이야기를 나는 지나칠 수가 없어 참회하는 심정으로 고백한다.


전에 말했듯이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ADHD 진단을 받았다. 주의 집중력이 약해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몽상에 자주 빠지는 유형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습부진아로 분류되어 알게 된 사실이기에 나는 이 결과를 맹신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학업에 대한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싶어서였다.


그런 아이가 어려서부터 과학을 좋아했다. 반면에 이과 출신에 공학 전공인 나는 아이가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없다고 판단했다. 무용을 전공하는데도 수학을 곧잘 했던 제 누나와는 여러모로 달랐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과학을 좋아하는 게 그저 과학자가 멋있어 보여서 그런 것이라고 치부했다. ADHD 진단이 이런 나의 판단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런데 아이는 중학교 1학년때 로봇과학 동아리에 가입해서 정말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지도선생님이 열의가 많은 분이셨고 아이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로봇과 과학을 모두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했다. 나도 처음엔 아이가 무엇이든 관심을 갖고 매진하는 모습이 반가워 많이 격려해 주었다.


나는 우리 아이가 학업에 쉽게 적응을 못하는 이유가 외적인 요인(학폭피해)이 아니라 내부요인(학습능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아이는 인정욕구가 강하고 미래에 대한 원대한 이상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전자는 나의 심각한 착각이었지만 후자는 정확한 진단이었다. 이 판단의 미스매치가 나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초래했다. 나는 아이의 이상을 실현시켜 주어야 아이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업보다는 어려서부터 재능을 보인 미술을 시키는 게 훨씬 가능성이 높다고 믿었다. 이런 내 믿음을 아내가 강력하게 지지해 줬다. 그래서 나는 악역을 맡기 시작했다.


아이의 동아리는 각종 로봇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상을 휩쓰는 유명 동아리였다. 그래서 학교에서 과학 좀 한다는 아이들은 모두 모여 있었고 매년 과학고 합격자를 꾸준히 배출했다. 아이는 자신이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다. 1학년 때 대전에서 개최된 전국대회에 참가하여 5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아이의 이런 놀라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속으로는 아이의 능력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나의 뿌리 깊은 선입견이 작용을 한 것이고 아이는 그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나는 아이가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미술 전공을 권하던 참이었다. 엄마나 아빠는 미술에 젬병이었지만 아이의 외할머니가 전직 미술교사 출신의 현직 화가이시고, 외삼촌이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현직 광고디자이너다. 아이의 둘째 큰아빠는 건축설계를 전공한 유명한 건축가 겸 교수이고, 고모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전직 광고디자이너였다. 이렇게 외가, 친가를 불문하고 미술계통에 종사하는 친척이 포진해 있었기에 내 판단은 확신에 가까웠다. 아이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어려서부터 꾸준히 미술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는 꽤 오랫동안 미술과 과학 사이에서 갈등했다. 난 아이의 갈등을 기다려줬지만 내심으로 우습게 생각했다. 그걸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고 아이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문제는 중학교 2학년 때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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