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의 평범성-2

어떤 이유로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by 낙산우공

나의 둘째는 어려서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평범의 기준을 객관화하긴 어렵겠지만 다수의 시선에서 그렇게 비칠 수 있는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세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고 간략히 언급해 보자면 이렇다.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뒤집고 일어서고 걷고 말하는 것이 좀 늦었다. 물론 이런 일은 흔할 뿐 아니라 섣불리 아이의 발달 여부로 이야기를 확장할 수 없다. 나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저 느긋한 성격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문제가 불거졌다. 유치원은 어린이집과 달라서 보육이 아닌 교육을 한다. 그 출발점부터 아이는 조금 쳐지기 시작했다. 아이 스스로 학습에 대한 자신감이 약했고 그것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나를 닮아 보기보다 예민한 성격이었는데 아내를 닮아 조금 무딘 성격으로 오해를 받았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좀 거칠게 사내아이로 키우려 했다. 그게 아이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이는 학교에서 학습부진아로 분류되었고 그 사실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걱정이 앞서 나는 사비를 들여 따로 심리상담센터에서 정밀검사를 받게 했다. 검사는 무려 3주에 걸쳐 진행되었고 마지막 4주 차에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우리는 꽤 과학적인 진단에 상당 부분 공감했지만 그곳에서 제시한 솔루션은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고 다소 상업적으로 느껴졌다. 아이의 지능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만 주의집중력이 부족한 ADHD 판정을 받았다. 과잉행동장애가 없는 ADHD를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아이를 좀 더 세심하게 지켜보는 것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아이가 학교의 경쟁환경에서 피로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 그리고 아이의 미래에 대해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라 생각했다. 그게 참으로 어리석고 무지한 발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가 학교폭력에 노출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공교롭게도 그 해 담임선생님이 젊은 초임 여교사였는데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으로 학부모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결국 그 선생님은 학부모의 민원 때문에 다음 해에 담임 배정에서 배제됐지만 우리 아이는 이미 그 피해를 온몸으로 받은 뒤였다. 아이는 몇몇 짓궂은 남자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고 일 년 내내 아이들의 놀림과 괴롭힘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내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은 2년이 지난 5학년 무렵이었다. 아이가 3학년 때 괴롭힘을 주도하던 녀석과 다시 같은 반이 된 것이다.


아이는 지금도 그 녀석이 살던 아파트단지를 지나지 못한다. 그 녀석은 심지어 반장이었고 학급 내에서 아무도 그 녀석을 학폭가해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아이는 용기를 내어 우리에게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해 주었지만 나는 과연 학교폭력사건으로 처리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는 누나의 억울한 학폭사건을 해결해 준 아빠에 대한 기대감으로 용기를 낸 것이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학폭신고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한번 경험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가해행위는 집단적인 놀림과 괴롭힘이 강했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장난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가해행위를 입증할 방법은 아이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칫하면 우리 아이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랬더라도 아이를 타이르며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었는데 큰애의 억울한 학폭사건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던 내가 지레 겁을 먹고 기피했던 것도 사실이다. 변명의 여지없는 나의 잘못이다.


아이는 초등학교 때의 집단 괴롭힘으로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 맺기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 그 상처는 거대한 트라우마로 남았고 중학교 3년 내내 우울감과 고립감에 갇혀 살았다. 그 엄혹한 시기를 아이는 홀로 버텨냈고 급기야 고등학교에 와서 심각한 병이 되고야 말았다. 아이의 우울증 치료를 겪으며 비로소 알게 된 진실은 나를 너무나 무력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겪은 학폭피해는 물리적인 폭행에서부터 성적인 추행, 패드립, 사이버폭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좋아하는 사우나에도 가지 못하며 공중화장실에서는 노출된 소변기를 이용하지 못한다. PTSD 검사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높은 결과치가 나왔다.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난 무엇을 했던 것인가? 자책과 분노가 교차했지만 난 아이를 살려야만 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벌써 10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아이가 처음 학폭피해를 호소했을 때 나는 우리 아이가 왜 동급생들의 타깃이 되는지를 짐작하려 했다. 우리 아이는 그들에게 만만한 아이였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 거슬리는 아이였을 것이다. 우리 아이의 엉뚱함이나 허술함이 그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아이를 만만하게 보지 않게 할 방법 따위를 조언해 주었다. 끔찍하게 한심한 아빠였다. 내 아이의 부족함이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나는 아이를 타이르기 전에 온몸으로 아이를 괴롭히는 대상과 일전을 벌였어야 했다. 그랬다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내 아이의 유별난 부분만 신경 썼다. 난 아빠로서 낙제다.


그러나 내 아이를 괴롭힌 아이들은 인간으로서 낙제다. 내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얻은 별명은 사회복지사였다. 아픈 아이, 다친 아이, 우는 아이를 지나치지 않고 살갑게 챙겨줘서 선생님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런 내 아이가 이젠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항우울제를 최다용량으로 처방받고 있지만 가끔씩 급격하게 우울감이 찾아오는 중증의 환자다. 무엇이 우리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기가 막히지만 나는 아빠다. 나는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내 아이를 지켜내야 하는 아빠다. 그래서 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며 오늘 이 글을 마무리할 것이다. 내 아이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있고 거기엔 항상 아빠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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