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았던 것들이 터져 나오면…
걷잡을 수 없었다. 아이가 우울감과 자살사고 때문에 오래전부터 고통받아왔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병원에 가기까지는 많이 망설여졌다. 마침내 병원에 발을 들이고 나서는 정말로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쳤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처음 6개월 동안 나는 종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그 시간을 잠시 복기해 보고자 한다.
아이에게 오랫동안 쌓여온 상처들이 곪고 썩어 터지기 직전이기는 했지만 결정적으로 트리거를 당긴 것은 1학기 첫 중간고사였다. 아이는 학폭의 상처로 썩어 들어간 7년의 시간을 보상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고 입시 결과에 대한 성취감이 컸다. 아이를 힘들게 만들었던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과는 영영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학교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아이는 본래 성실한 편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는 더 의욕적으로 변했다. 학교가 멀어져 등하교가 힘들었지만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학과와 실기 방과 후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했다. 특히 학과수업에 대한 열의가 굉장했지만 강남 아이들이 즐비한 학교에서 아이의 학과성적은 맥을 추지 못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우리 아이는 합격권 내신등급에 겨우 턱걸이를 한 터였고 절대평가인 탓에 내신 따기가 한결 쉬운(시험문제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평이한) 강북의 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아이는 오랜 학폭피해의 영향으로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많았고 새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처음 보는 강남 아이들과는 입시학원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더 쉽지 않았다. 아이는 그걸 성적과 실력으로 돌파하고자 했는데 첫 중간고사를 망쳐버린 것이다. 아이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험 전날까지 풀어본 기출문제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는데 정작 본시험에서는 낙제 수준을 받은 것이다.
중학교 때 아이의 과외선생을 자처한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평소에 강점을 보였던 국어과목에서 그랬으니 충격이 더 컸다.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지만 뒤늦게 안 사실은 ADHD로 인한 학습방해뿐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아이의 학습능력과 주의집중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험날 과도하게 긴장했던 게 소심한 아이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학과나 실기에서 월등한 성적을 내서 친구들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아이의 호기로운 기대는 이때 여지없이 무너졌고 아이는 좀처럼 그 실망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교내 조형 공모전에 1등으로 입상을 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길 잠시 기대했다. 그러나 전공 실기수업에서도 타고난 재능을 뽐내는 한 아이가 뒤늦게 합류하면서 아이는 열등감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져버렸다. 방과 후수업을 빼먹기 시작했고 자주 우울감을 호소했다.
마침 학교 위클래스의 심리검사에서도 우울증이 심각한 것으로 나오면서 아이는 병원 진료를 요구했다. 병원에서 받은 각종 검사 결과는 염려했던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고 아이는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하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6개월 이상의 상담치료와 1년 이상의 약물치료를 지속해야 효과가 나타날 거라고 조언했다.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다는 아이의 진단 결과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나의 어리석은 판단이 아이의 병을 키운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이는 심약해서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니라 그럴만한 상황에 장시간 노출되고 방치되어 그 지경이 된 것이 맞았다. 나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착각에 빠져 상처 입고 슬퍼하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 그 힘겨운 시간 동안 아이는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홀로 버티고 있었으니 번아웃이 온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멈춰야 했는데 아이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우울증에 대한 나의 오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항우울제와 같은 약물을 복용하고 상담을 통한 심리치료를 병행하면 좋아질 거라는 안이한 생각 속에 아이의 일상이 무너지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임계점을 넘은 물질은 성질이 변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번아웃으로 임계점을 넘었고 그 순간 아이가 감당하던 세상은 무너졌다는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아이는 학교에 오래 있지 못해 조퇴와 결석을 반복했다. 수업 중 공황발작이 시작되었고 그 빈도와 강도가 급속한 속도로 증가했다. 나는 잠시 우울증 진단과 치료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사실은 나의 무지의 소치였다. 아이는 상담치료를 받은 날 더 힘들어했다. 끔찍한 기억을 소환하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시켰고 그렇게 쏟아낸 감정을 아이는 추스르기 힘들어했다. 많은 우울증 환자가 상담치료를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는 두 달 정도가 지나고부터 상담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모든 것을 털어냈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분노했다. 어릴 적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 그런 사실을 방치한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 모두를 증오했다.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워지는 상태까지 분노가 폭발한 날에 아이는 어김없이 졸도했다.
한동안 나는 아이의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런데 아이는 분노가 잦아들면 다시 나에게 기댔다. 그 쳇바퀴 같은 하루하루가 끝이 없을 것처럼 반복됐다. 그때 나를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그래도 아이는 나에게만 의지한다는 것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기댈 곳은 아빠였다. 아이에게는… 나는 버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