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라는 블랙홀

그 실체와 마주하다.

by 낙산우공

우울증의 원인은 모두 다르다. 증상과 전개 양상은 유사하다. 난 정신질환에 무지했고 우울, 불안, 공포와 같은 신경증에는 더더구나 그랬다. 깡통이었다. 정신과에 대한 불신과 함께 세간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아이에게 내려질 낙인이 두려웠고, 그 부질없는 걱정이 아이의 병을 키웠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보인다면 무조건 정신과 상담을 받길 권한다.


우울증 진단을 받으면 약물 처방은 간단하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게 된다. 찾아보면 알게 되겠지만 항우울제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처방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하겠다. 다만 이 항우울제가 6가지의 종류(이걸 보통 OOOO계열로 구분한다)로 나누어지는데 어떤 약이 환자에게 적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약을 3주 이상 복용시키고 효과나 부작용을 보아가면서 처방을 바꾼다. 복용량도 몇 주 간격으로 서서히 늘리거나 줄인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부작용이 심각하면 즉시 복용을 중단하고 대체 약물을 처방하지만 부작용이 없더라도 반드시 약효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덕분에 아이에게 적합한 약물을 찾는데 우리는 석 달 이상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증상에 따라 신경안정제, ADHD 치료제, 각종 우울증 보조제가 처방된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따라가 보아도 비전문가인 일반인에겐 한계가 있다. 그저 의사를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다. 부모의 입장에선 매우 힘든 과정이다. 그렇다고 뾰족한 다른 수가 있을 리 없다.


그렇게 석 달 가까이 1~2주 간격으로 5분 남짓의 진료를 통해 아이의 약 처방이 바뀌어 갔다. 부작용은 소변을 잘 못 보거나 잠을 못 자거나 식욕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그 반대이거나 어지럽거나… 일일이 기록하지 않으면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다양했다. 요즘은 아이의 손떨림이 심해 세밀한 미술작업을 할 수 없다. 이런 신체적 생리적 부작용을 겪게 되면 부모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다. 어쩌다가 내 아이가 어린 나이에 이런 모진 일을 겪는가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러나 감수해야 한다.


항우울제의 가장 우려스러운 부작용은 자살충동이다. 우울감이 심해지면 자살사고가 증가한다. 이걸 억제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먹는데 거의 모든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의 공통적인 부작용이 자살충동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없는데 우리는 이 걸 몰라서 작년 12월 26일에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일을 경험할 뻔했다. 아이는 약 부작용 때문에 우울증 보조제를 한 주간 끊었고 덕분에 밤마다 악몽과 환청에 시달렸다. 아이는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는데 학교와 집에서 각각 감정 상하는 말을 들었으며 오후 늦게부터 급격히 찾아온 우울감으로 가라앉으면서 극단적인 선택에 충동적으로 이끌렸던 것이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심리적 우울감이나 불안 증상이 완화되지만 성인과 달리 청소년은 일상생활을 계속하기 어렵다. 물론 증상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다. 아이는 상담치료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어렵게 끄집어냈는데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묵묵히 들어만 주는 상담치료사에게 불만이 있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겨울방학부터 상담치료를 주 2회로 늘렸는데 의사도 상담사도 이런 나를 말리지 않았다. 지금 다니고 있는 상담센터는 절대 주 1회 이상의 상담을 권하지 않는다. 이유는 뻔하다. 상담치료는 물리치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는 약 한번 바른다고 새살이 돋지 않는다.


느긋해져야 했다. 아이의 투정도 비난도 불만도 조금은 터무니없는 억지도 그러려니 받아주어야 했다. 우울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 땐 아이의 충동적인 욕구(지름신?)도 눈감아 주었다. 열여섯 살짜리가 삶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다. 우울하고 좌절하고 슬퍼할 수 있는 나이긴 하지만 과거의 무너진 삶으로 미래가 없는 아이의 우울한 얼굴을 보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아이는 사고 싶은 물건을 갖고 나면 잠시 행복해했다. 나는 내 용돈을 반납해서라도 아이의 허영심을 채워 주었다. 그것이 부질없고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우울증에 동반되는 대표적인 증상은 무력감이다. 그래서 일상생활을 소화하기 힘들다. 어떨 땐 우울감과 무력감 중 무엇이 먼저인지 헷갈릴 지경이 된다. 우울해서 무력해지는 건지 무력해서 우울해지는 건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많은 청소년 우울증 환자가 1년 넘게 집에 처박혀 은둔자가 되는 이유다. 그 무력감이 사라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아이는 아침마다 다리에 경직과 마비가 왔고 그건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태라는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였다. 아이는 사지가 멀쩡한데 걷지 못했다. 우리 집에는 두 개의 노인용 지팡이와 한쌍의 목발과 휠체어가 생겼다.


마비증상보다 무서운 게 공황발작이었다. 아이는 가끔씩 과호흡이 왔고 식은땀을 흘리며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과호흡이란 체내에 산소량은 증가하는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못해 발생하는 호흡곤란이란 걸 그때야 알았다. 즉 본인은 죽을 것처럼 괴롭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응급상황이 아닌데 우리는 119 구급대를 여러 차례 불러야 했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아이의 공포가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공황발작이 점점 잦아졌고 학교에서나 사람이 붐비는 공공장소에서 심했다.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는 택시도 타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 4월부터 휴직을 하고 아이의 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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