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입-압축-폭발-배기를 반복하다.
우울증이란 병은 나로 하여금 정말이지 대책 없다는 생각이 무시로 들게 만들었다. 차라리 호흡기든 소화기든 내장기관이나 근골격계 질환과 같이 증상, 원인, 처방, 치료 및 예후가 눈에 보이는 병이라면 이렇게 숨 막힐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게 했다. 우울증은 나에게 실체가 잡히지 않았고 그래서 답답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미궁과도 같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아주 조금은 나아졌다. 그것이 시간의 힘인지 내 이해의 폭과 깊이가 생긴 것인지 그냥 내성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아이가 스스로 좋아진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이는 우울증 진단과 함께 약물과 상담치료를 받으며 점점 나빠졌다. 7년간 쌓인 걸 풀어내는데 당연히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며 많은 걸 받아주었지만 아이는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분노를 배출하여도 지나간 7년을 돌이킬 수는 없었으니까. 만 열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7년은 그냥 일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생애 전부를 저당 잡힌 채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약물과 상담으로 아이의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는다면 그들은 천하제일의 명의일 것이다.
몸에 맞는 항우울제를 찾기까지 아니 찾은 이후에도 아이의 감정은 널을 뛰었다. 본인도 그런 극단적인 감정변화에 당황할 정도였다. 분노는 폭발할 때까지 분출되었고 우울감은 땅이 꺼질 듯 아이를 가라앉혔다. 그런 아이가 학교수업을 제대로 받을 리 없었다. 우울증 치료라는 명목으로 과거의 상처를 들쑤셔 버린 아이는 겨우 봉인하고 있던 울분이 터져 버린 것이다. 그 적대감은 가족뿐 아니라 현재의 친구들에게도 꽂히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모든 주변 사람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으로 확장되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급식을 먹지 못했고 소란스러운 교실 분위기에 공황 증상이 수시로 나타났다. 조퇴와 결석을 밥 먹듯 했고 겨울방학을 앞둔 며칠은 내리 학교에 가지 못했다. 정확히는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12월 26일 이후다. 학교에 그런 사실을 말할 수 없었고 스스로 이겨내라며 아이를 독려하던 담임선생님은 답답해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의 병세를 일으켜 보겠다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혔다. 상담치료를 주 2회로 늘리고 아이가 평소 하고 싶어 했던 테니스와 오보에 레슨을 잡았다. 아이는 의욕적으로 동의했지만 난 아이의 몸을 살피지 않은 채 헛짓거리를 끝도 없이 벌린 꼴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했는지는 금방 알게 되었다. 아이는 상담을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하기 시작했고 입시와는 무관한 테니스와 오보에도 작심삼일을 채우지 못했다.
그런 병이었다. 우울증은… 무력감을 이겨낼 수 없는 병이었고 우울증 약이 그 무력감을 배가시킬 수밖에 없는 병이었다. 나의 조급증이 낳은 우스운 해프닝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우울증이라는 병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던 것이다. 운동이 우울증에 좋다는 말에 덜컥 테니스를 시켰는데 아이는 이미 산책도 못하는 몸이었다. 음악을 좋아했고 특히 오보에를 배워보고 싶어 해 레슨을 알아봐 주었지만 아이는 첫 레슨을 이틀 앞두고 부담스럽다는 말을 꺼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런 병이었다. 아빠를 골탕 먹이려 한 게 아니었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이 끔찍하게 어려운 거였다. 난 그 당연한 사실조차 몰랐다. 마음만 앞섰다.
그렇게 아무런 성과 없이 겨울방학이 지나갔고 아이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우울감, 무력감, 분노와의 사투를 벌였다. 분출하는 울분을 삭이기 위해 아이는 과도하게 허영심에 집착했고 아이의 방에는 그 결과물이 쌓여갔다. 흡입-압축-폭발-배기의 4행정 사이클을 반복하는 내연기관과 같이 아이는 주기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여 응축된 분노로 배출하고는 스러졌다. 아이는 폭주하는 감정과 차갑게 식어버리는 감정 사이를 수시로 오갔고 그런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또 다른 자아(인격)를 만들어냈다.
나는 아이가 만들어내는 내면의 인격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인위적인 방편이라는 걸 금세 눈치챘지만 혹시라도 다중인격장애(해리성정체장애)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밤새 인터넷을 검색하며 공부를 해야 했다. 이를테면 아이는 욕구(특히 소비욕)에 집착하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인격을 자신과 분리했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냉정하면서 지극히 이성적이고 지능적인 인격을 자신과 분리했다. 이들 각각의 인격에는 이름이 붙여져 있었고 아이는 자기 안에 3개의 인격이 공존한다는 비밀 아닌 비밀을 나에게만 몰래 털어놓곤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는 어려서 학폭에 노출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분노를 통제하기 힘들 때는 이성적 자아를 소환하는 대신에 감정을 차단해 버렸고 이성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폭주하는 감성적 자아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인격으로 정의함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려고 했다. 아이는 이런 방식으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자기만의 성을 쌓아왔다. 나는 이것이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흔한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한주만 버티면 종업식이었는데 아이는 우여곡절 끝에 첫날과 마지막날 딱 두 번만 학교에 갔다. 그리고 다시 3주간의 봄방학이 시작되었다. 종업식날을 무사히 마친 아이를 격려하며 축하해 주었는데 그것이 아이의 마지막 등교가 될 줄을 그때는 몰랐다. 아이는 만으로 열일곱 살이 되는 올해에 사실은 일곱 살이 되었고(퇴행현상은 일반적인 청소년 우울증 증상 중 하나다) 나는 키가 186센티미터에 달하는 일곱 살 아이와 지리멸렬한 동행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