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서막

그렇게 아빠가 된다고?

by 낙산우공

2021년 5월, 나는 마흔아홉 번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휴직을 하여 아이 둘의 입시 뒷바라지에 나섰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여느 열혈 학부모 흉내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이 마뜩잖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빠가 직장을 쉬면서 아이를 챙기는 게 흔한 풍경이 아닌 나라에서 나는 그렇게 유난을 떨었다. 나의 사는 방식이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그저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아내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다면 내가 하는 게 맞았다. 쉰을 바라보는 직장인이 커리어를 망가뜨리면서 감행하기에는 너무 무모한 것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이 있었지만 나는 솔직히 휴직을 도피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번아웃을 한번 겪은 뒤로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부서 내의 인사발령으로 잘 맞지 않는 상사와 힘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사실 이만한 핑곗거리도 없었다.

물론 내가 휴직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이 그런 상황에서는 형편대로 아이들의 입시를 치렀을 것이다. 엄마나 아빠 중 한 사람이 전담으로 너희에게 붙을 수 없으니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하자고 아이들을 달랬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도 아이들이 입시에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즉, 나의 휴직과 전담마크가 아이들의 수험생활에 도움이 되긴 했겠지만 그들의 당락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입시는 당사자가 치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수험기간 내내 많이 시끄럽고 요란스럽게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이 이어졌을 것이다. 그것을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처한 덕분에 아이들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입시 스트레스를 제외하고 다른 것에 힘겨워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등하교, 레슨(강습) 스케줄, 식사 등등의 것들에서 나는 6개월간 거의 두 명처럼 움직였다. 우리 아이들은 예체능으로 각각 대학(무용)과 예고(미술)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전적인 조력이 필요했다. 이 나라에서는 그랬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각자 원하던 입시에 성공했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표 중 하나를 이루어냈다는 사실이 나는 대견했다. 그들이 이뤄낸 결과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와 무관하게 나는 행복했고 무조건 감사했다. 창창한 미래를 생각하면 하찮을 수도 있는 관문 하나를 통과했을 뿐이지만, 그 성공의 경험이 그들에게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기억으로 각인되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사한 상황에서 그들의 기억은 자신감으로 소환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기뻤고 6개월의 치열한 삶(?)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여겼다. 그리고 4개월간 아이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추스른 뒤 직장에 복귀했다. 직장은 여전히 힘겨웠지만 열 달의 브레이크는 나에게 다시 직장인의 삶을 이어갈 힘을 준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거대하고 심각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22년의 대한민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우리 집에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역대급 시련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상황은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 7월에도 진행형이다. 아마도 이 글을 마치는 순간까지 크게 달라질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로써 295일째를 맞는 내 아들(둘째)의 우울증 투병 중에 이 글을 시작한다. 좀 더 솔직하게는 내 아들이 요단강을 건너려고 시도했던, 내 모든 것이 무너질 뻔했던, 내가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2022년 12월 26일로부터 정확히 200일이 되는 날이다. 내 아이는 그날 아빠의 퇴근길을 함께 한 뒤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 한강으로 향했고 종착역에서 다섯 정거장 전에 겨우 멈추었다. 그 아슬아슬하고 끔찍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난 숨조차 쉴 수가 없다. 내 삶의 모든 것을 멈추게 했던 그날로부터 100일이 채 못되어 나는 두 번째 휴직을 감행했다. 그렇게 또 100일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아빠로서 낙제다. 그러나 아빠가 되는 일만큼은 멈출 수가 없어서 이 글을 쓴다. 내가 어떻게 아빠로 살아왔고 또 어떻게 아빠로 살아야 하는지 그 답을 얻어보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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