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만…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스낵 '새우깡'을 이 글의 제목으로 소환한 이유를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게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면서 뜬금없는 새우깡 타령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우리 둘째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새우깡 근처에도 못 가는 아이다. 뒤늦게 발견된 알레르기 때문에 예전에 잘 먹던 게나 새우가 들어가는 음식을 하나도 못 먹게 되어 속상함이 큰 아이를 놀리는 것 같기에 부적절한 비유인 것도 인정한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을 새우깡으로 부르게 된 연원이 깊고 나름 애착이 가는 단어이기에 나는 이 표현을 버릴 수가 없었다.
변명이 길었다. 맞다. 새우깡은 우리 집 아이들의 별명이다. 정확히는 둘째의 별명이었고, 그 별명 덕에 아이는 담임선생님을 빵 터트리게 한 적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각자 집에서 불리는 별명을 말해보라고 하셨다. 우리 둘째는 아빠가 지어준 별명, '새우깡'을 이야기했는데(사실 이 녀석에게 내가 지어준 별명은 최소 다섯 개가 넘는다) 선생님께서 이유를 물어보시자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손이 많이 간대요..."
그랬다. 우리 둘째는 타고난 귀염둥이(대한민국의 모든 부모가 둘째를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닐까 싶지만)였는데 그에 반해 탁월하게 엄마, 아빠의 손을 필요로 하는 아이였다. 국민간식 '새우깡'에 손이 많이 가는 이유와는 판이하게 다른 이야기지만 새우깡 광고의 중독성 있는 카피 '손이 가요 손이 가'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사람들에게 회자되듯이 우리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유사한 의미로 '손꾸락'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손가락의 소근육 발달이 늦어 어떤 물건이든 떨어뜨리기 일쑤였기에 지어준 별명이었다. 한 번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는데 손에 받아 들자마자 180도 회전하여 땅바닥에 곤두박질친 적도 있었다. 아니 한 번이 아니었다. 그때 아이의 속상한 표정을 보노라면 우리는 혼을 내기는커녕 다시 사줄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은 언제나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초능력을 나는 오랜 관찰 끝에 세 가지로 분석해 내고야 말았다. 그 세 가지 능력의 조합이 상상을 초월하는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능력은 바로 '애교', '넉살' 그리고 '촌빨'이었다. 이 세 가지가 따로따로 기능할 때는 절대로 초능력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동시에 이 세 가지가 결합되면 그땐 초능력이 된다. 중요한 건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인간이 잘 없다는 사실이다. 그 기묘한 조합을 나는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렀다. 이 녀석은 제 누나가 절대 따라 하지 못하는 살인적인 애교를 지니고 있었는데 특히 두 손을 가지런히 맞잡고 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사람을 홀리듯 눈을 깜박거릴 때가 압권이었다. 분명히 남자아이였다.
넉살은 한 수 위다. 예민하고 소심한 나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다. 이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아이였다.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었고 어떤 실수나 사고를 쳤을 때도 항상 그랬다. 화를 잘 내지 않고 항상 여유가 넘치는 이 녀석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가장 부족한 덕목을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첫째인 딸아이는 나를 닮아 워낙에 성격이 급해 '급순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반대로 둘째의 별명은 '만돌이'였다. 언제나 만만디였다. 천하태평한 녀석의 능글능글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이 밉지 않았다.
마지막 촌빨은 이 녀석의 초능력을 완성시키는 신의 한 수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숱이 많고 진했던 아이는 상대적으로 이마가 좁았다. 반면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컸다. 그래서 언뜻 보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곤 했다. 갓 돌이 지났을 무렵 아이를 안고 붕어빵을 사러 동네 가게에 들른 아내가 해준 얘기가 있다. 붕어빵집 사장님은 전직 조폭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험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과거를 청산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영화에 등장할 법한 인상의 사장님이 우리 둘째를 보고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는 거다. 과묵한 아저씨가 해 준 말이 압권이다.
"엄마 등에 업혀 있지 않았으면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뻔했어요..."
그런 강한 인상의 아이가 온갖 막춤을 시전 할 때의 느낌은 오래전 '우정의 무대'에 등장하던 군인아저씨를 연상시켰다. 이렇게 막강한 세 가지 무기를 완벽하게 갖춘 나의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급식조리사 아주머니를 무장해제시켰고, 유치원에서도 급식조리사 아주머니를 무장해제시켰으며, 초등학교 때에는 학습지 선생님을 무장해제시켰다. 나의 본가에서는 가장 쎄한, 녀석의 큰엄마와 가장 무뚝뚝한, 녀석의 고모부를 움직이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정녕코 천하무적이었다.
그랬다. 나의 새우깡은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또 손이 가는 아이였다. 그런 새우깡이 우리 집에는 이 녀석 말고 둘이나 더 있다. 타고난 모범생이지만 무용을 전공한 덕분에 이래저래 나를 피 말리게 했던 첫째가 있으며, 3년 전에 입양한 반려견은 경국지색(?)의 미모를 자랑하지만 1년 동안 두 번이나 결석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치명적인 유전병을 타고났다. 그래서 이들 셋이 모두 나에게 새우깡이었다. 가끔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깡1(one), 깡2(two), 깡3(three)라 부른다. 이들 중 하나가 나의 손이 필요한 날을 나는 '1일1깡'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끔 '1일3깡'을 해야 하는 날도 있다. 그렇게 나는 새우깡 셋을 안고 살아간다.
힘이 들어도 나름 행복했던 나의 새우깡데이를 굳이 글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를 이제 밝혀야겠다. 우리 집의 원조 새우깡이었던 둘째가 요즘 아프다. 몸보다 마음이 아프다. 자신은 애교, 넉살, 촌빨로 완전 무장한 채 모두를 무장해제시키던 이 아이가, 마음이 아픈 아이가 될 줄을 난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렇다. 나의 방심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의 새우깡 이야기를 정리해 봐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글을 어떻게 끝맺게 될지 나는 모르지만 뭐라도 해야겠기에 내 기억에 남겨진 새우깡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