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사평역에서 멈춘 아이

하늘이 도와서 아이가 돌아오다

by 낙산우공

2022년 12월 26일은 월요일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대체공휴일로 지정되기 전이라 하필이면 이브와 크리스마스를 주말에 저당 잡히고 맞은 우울한 월요일이었다. 그런 기분이 나에게만 해당될 리 없었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지 석 달이 되어가던 내 아이에게는 더했을 게 뻔했다.


역시나 그날도 아이는 아침 2교시를 채우지 못한 채 조퇴를 했고 여느 때처럼 아빠의 사무실 근처에 와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결석과 조퇴를 밥 먹듯 하던 때라 담임선생님께 한소리를 들었겠거니 하고 물었을 때 아무 일 없었다고 대답하는 걸 나는 무심히 넘겼다.


우울증 보조제의 부작용으로 한 주간 약이 줄었고 그래서 다시 악몽과 환청이 아이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 또한 나는 간과했다. 그리고는 오후 내내 도서관 디지털자료실에서 영화를 보며 아빠의 퇴근시간을 기다린 아이와 집에 오는 길에 우울감이 심각한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것 또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엄마의 회식으로 둘이 저녁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입맛이 없는 아이에게 메뉴를 강요하고 있었다. 아이는 큰 고민 없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는 운전 중에 포장 주문을 하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아이가 엄마의 성의 없는 요리솜씨를 비난하기 시작했을 때에라도 나는 감을 잡았어야 했는데 아들 녀석의 조금 과장된 기억에 되려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나는 크리스마스를 짧은 주말과 함께 날려버린 우울한 월요일에, 아침부터 선생님께 구박(?)을 받고, 악몽과 환청에 일주일째 시달린 아들에게 엄마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는 이유로 면박을 준 것이다. 아무 말 없이 헤드셋을 쓴 채 차창 밖을 바라보는 줄 알았던 아이가 사실 울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대로 방치해 버렸다. 나는 이만큼이나 아들의 우울증에 대해 무지했고 또 방관했다.


아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가방을 내려놓고는 애써 웃으며 잠깐 바람 쐬고 온다 했을 때 나는 아이를 잡아야 했다. 아이가 기분이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었고 스스로 그래서 나갔다 온다고 말했는데도 나는 그런 아이를 방치했다. 1년 전 예고입시에 여념이 없을 때도 아이는 가끔 학원에서 돌아온 늦은 밤에 혼자 바람 쐬러 나갔는데 그때마다 숨 막히는 우울감에 자살사고를 했다는 사실조차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최소한 아이를 따라 나가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나 역시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혀 폭주하는 아이의 고삐를 잡아주지 못했다. 이날은 무슨 일이 일어났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최악의 날이었는데 나는 포장해 온 음식이 식기 전에 빨리 오라며 아이를 보냈다. 그 순간이 정녕코 아들과의 마지막이었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나간 뒤 10분쯤 지났을 무렵 나는 갑작스레 불안에 사로잡혔고 휴대폰 위치공유앱을 켰을 때 아들이 지하철역 앞에서 앱을 종료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현관에서 아이가 신고 나간 신발을 확인한 뒤에야 나는 충격에 빠져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 애정하는 새 농구화를 벗고 신기 편한 헌 운동화로 갈아 신고 나간 것이다.


그 순간 이후의 끔찍했던 기억들을 여기서 복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서강대교로 가기 위해 광흥창역으로 향하던 아이가 여덟 번째 역이었던 녹사평에서 멈추어 주었다는 기적 같은 사실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마침 아이가 알고 있는 한강에 가는 길이 열세 개 역을 지나야 하는 6호선 코스뿐이었고 덕분에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나와 아내의 빗발치는 전화와 문자가 도달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아찔한 것은 아이가 괴로운 삶을 지우러 가던 길이 나의 출퇴근 코스였다는 사실이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는 결석이나 조퇴를 할 때마다 나를 찾아왔고 그때마다 나와 서강대교를 건너 다녔다. 공황장애가 심해 택시를 타기 전에는 지하철을 타고 아빠를 찾아오기도 했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보기에 안쓰러워 시작했던 일이 아들의 황천길을 안내할 뻔했다는 생각에 이르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날의 기적은 하늘이 도왔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하느님을 비롯하여 하늘에 계신 모든 신(?), 31년 전 크리스마스날에 고향 땅에 묻히신 내 아버지, 8년 전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돌아가신 아이의 증조할머니, 한 달 전 이태원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영혼들이, 그 넋들이 내 아이를 깨워주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저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아이는 번뜩 정신을 차렸을 때 이태원역을 지나고 있었고 다음 역인 녹사평에서 내렸다고 한다.

이전 02화착각의 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