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일의 번뇌

휴직 108일 차, 고뇌의 삶이 깃들다

by 낙산우공

아이의 우울증 간병을 위해 휴직한 지 108일이 되던 날, 여름방학을 하루 앞두고 그나마 한 학기를 무사히 마쳤다는 입방정을 떨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신 위드위센터 선생님들께 드릴 과일도시락과 마들렌을 준비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아직 무언가를 축하해야 할 만큼 성취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험난하고 지리멸렬한 과정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밤 10시 반에 스트레스성 과호흡과 마비가 왔고 어김없이 응급실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호소를 더는 외면할 수 없어 결국 119 구급대의 힘을 빌려 대학병원 응급실에 오고야 말았다.


모든 병원 응급실이 그렇듯 보호자가 수 없이 반복해서 말하는 아이의 병력과 증상에는 무관심한 채 매뉴얼에 따른 대응과 검사가 이어졌다. 시늉으로도 보기 어려운 설명과 동의 서명이 잇따랐고 아이의 몸에는 이름 모를 장비들과 주삿바늘이 쉴 새 없이 거쳐 갔다. 3시간 동안 아이에게 취해진 조치라고는 알량한 수액뿐이었으나 그조차 반의 반의 반도 맞지 못하고 우리는 귀가조치되었다.


우울증 병력과 유사한 증상의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말을 잘 못하고 몸을 못 움직인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뇌경색을 의심하여 고가의 검사들을 진행했다. 의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나도 알만한, 열일곱 살 아이에게 뇌경색이 올 리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정녕 몰랐을까? 결과가 나온 후 겸연쩍었던 의사는 애먼 아이에게 왜 아까는 말을 하지 못했냐며 다그치기까지 하였다.


이런 뻔한 결과를 알기에 여러 차례 응급실행을 원하는 아이를 만류해 보았으나 오늘만큼은 들어먹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그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직접 경험시키는 것뿐이었다. 구급대원이 오기 전에도 그들이 오고 나서도 나는 병원만은 가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우리는 61만 8천 원을 들여 3시간의 고생을 사서 한 뒤 비로소 값진 결론을 얻은 것이다. 내가 했던 설득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한 아이는 민망한 나머지 되려 화를 내었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틀렸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해 보지만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다. 나는 뻘짓거리를 세상 무엇보다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인데,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이런 경험을 부지기수로 하니 말이다. 시행착오는 제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더 이상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는 학습효과를 얻는다. 그런데 이 아이와 겪는 일들은 너무나 동일한 상황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것도 내 전생의 업이었을까? 휴직 108일 차를 맞아 나는 108개의 번뇌와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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