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지 않은 끈

푸른나무재단을 만나다.

by 낙산우공

아이가 학업중단숙려제를 신청하고 한 달 동안 멈출 수 있었던 계기에는 푸른나무재단이 있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라는 과거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곳은 학교폭력으로 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가 수십 년을 몸 바쳐 일구어낸 경이로운 결과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방송매체('유퀴즈'라는 온 국민이 애정하는 방송프로그램) 등을 통해 소개되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이곳이 나의 아이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일이 나와 우리 아이에게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설령 내 아이가 완전히 우울증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올봄이었던가, 방송에서 우연히 재단의 설립자가 출연하는 걸 보게 되었는데 언젠가 들어 본 것 같은 그분의 사연에 나는 꽂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단 홈페이지를 찾아보며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프로그램이 있을까 둘러봤는데 단번에 상담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아이는 병원의 상담치료를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런데 3월 말에 학업중단숙려제를 신청하려 할 때 아이가 먼저 푸른나무재단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를 통해 푸른나무재단에 연락이 되었고 아이는 숙려제 기간부터 주 1회 재단의 상담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에 아이는 다니던 병원의 부설 상담센터에서 5개월째 상담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점차 상담을 거부하다가 3월부터는 거의 안 가다시피 하던 터였다. 예약을 당일에 취소할 수는 없어 아이 엄마나 내가 대신 가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아이의 상태를 공유하고 조언을 듣는 게 무슨 효과가 있었겠는가… 그런 답답했던 상황에서 학폭 피해자에게 특화된 재단의 상담프로그램은 아이에게 제법 공감을 얻은 것 같았다. 여전히 상담을 힘겨워했지만 총 10회 차가 진행되는 동안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상담에 참여했다. 덕분에 이제는 외부 기관에서 보다 심층적인 트라우마 상담치료를 연계해서 받고 있다.


학업중단숙려제 때문에 찾게 된 푸른나무재단에서는 우리 아이처럼 학교폭력 피해로 학교에 다니기 힘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청의 위탁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위드위센터라는 조직을 통해 일시보호프로그램이라는 위탁수업이 진행되었는데 학교와 다르게 아이들에게 학업의 부담을 주지 않았으며 소수의 아이들로 편성되어 있었다. 학업중단숙려제 한 달이 지난 후 우리 아이는 자연스럽게 일시보호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학교 문턱도 못 넘던 아이가 한 달 만에 학교에 돌아갈 수 있으려면 마법이 필요했다. 우리는 마법 대신에 현실적인 대안을 택했고 휴학을 고민하던 아이에게는 이만한 기회도 없었다.


문제는 첫날이었다. 3월 개학 후에 제대로 등교 한 번을 못했던 아이가 조금 다른 환경이긴 하지만 과연 일시보호프로그램에 잘 참여할 수 있을까? 비슷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낯선 아이들 틈에서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과 근심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일단 부딪치고 볼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운명의 날은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5월 4일이었다. 난 아이를 센터에 데려다주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두 시간을 기다렸다. 다행히 아이는 수업에 큰 무리 없이 참여했다. 시간이 갈수록 한 살 아래의 남자아이와 한 살 위 누나 사이에서 나름대로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연대의식이 있었다.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일시보호 프로그램이 순탄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아이는 오랜 은둔(?) 생활로 체력적으로 한계상황에 도달해 있었는데 그걸 극복할 의지는 약했다. 체력을 키우고 일상을 회복하기에는 아이의 우울증이 너무 깊었다. 항우울제를 최다용량으로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력감을 이겨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아이에겐 가혹한 일이었다. 힘든 날엔 조퇴를 시켰고 한주에 하루 이상은 결석을 했다. 그렇지만 그 일상을 멈추지는 않았다. 자주 삐거덕거렸지만 아이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우울증 환자에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곁에서 지켜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그렇게 2학기가 시작된 지금까지 40일이 넘게 위드위센터의 일시보호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숙려제 기간까지 포함하면 5개월이 되어 간다.


일시보호프로그램은 학기마다 월마다 다양하게 운영되는데 학년도 전공도 다른 아이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학교의 교과목을 배우진 않는다. 다만 바리스타, 코딩, 쿠킹, 영화제작, 진로, 음악치료 등등 학교에서는 접할 수 없지만 아이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심신이 지쳐있는 아이들을 케어한다. 말 그대로 일시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다.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교육보다는 치유의 시간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도 큰 거부감 없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이는 정상적인 학교일과는 아니지만 자신도 루틴한 일상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한달살이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이에게 휴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삶의 패턴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했던 전공(조소)과 미래의 꿈(작가)을 다시 잡으려 하기 시작했다. 학폭 피해로 인한 PTSD로 삶 전체가 망가졌다고 분노했던 아이에게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는 학교에 등교하지는 않지만 6월부터 방과후 실기수업을 가끔씩 다니면서 2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내 미전(미술전시회)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그래도 학교에 가기 전엔 반드시 필요시약(신경안정제)을 복용했다. 공황발작이 올 수 있었고 그 직전까지 간 적도 몇 차례나 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간헐적으로 등교에 성공했다. 아이가 처음 실기 방과 후 수업에 간 날, 학교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던 나에게 한 줄의 문자가 왔다. 나는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아빠, 행복해...."


아이는 힘겹게 학교에 들어갔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다시 작업을 하게 되면서 잊었던 과거의 감정들이 잠시 돌아왔던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좋아했었고 이 아이들과 함께 이 작업실에서 비지땀을 흘렸었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아이는 학교에 가는 일이 매번 힘들었지만, 교문만 바라보아도 오금을 절이던 시절에 비해서는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변화의 시작이 푸른나무재단이었음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여름방학부터 독일어 과외를 시작했다. 아이는 우울증 약 때문에 집중이 필요한 과외수업을 두 시간씩 소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따로 처방을 받아 과외수업 시작 전에 집중력강화제(ADHD약)를 복용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각성제와 수면제(아이는 하루 세 번 신경안정제를 복용한다)를 모두 복용하는 꼴이기 때문에 아이의 몸은 버겁다. 그래도 이 시간 만큼은 아직까지 잘 버텨내고 있다.


아무튼 우리 아이는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아주 오랫동안 지나왔는데 여전히 터널이지만 한줄기 정도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모든 게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지만 아이가 놓지 않았던 세상과의 끈이 유일하게 아이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고 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가능하기 시작했던 건 푸른나무재단 때문이다. 나는 이곳을 만나면서 세상이 우리 아이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다음달부터는 재단의 학부모교육 프로그램으로 알게 된 정신의학과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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