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자발적 수명연장 프로젝트

by 낙산우공

내 아이의 우울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이는 추석연휴가 지나면 학교에 복귀할 예정이지만 다시 멈추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이 장황했던 글을 마무리하려니 달리 할 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처음 학교폭력에 노출되었던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블로그에 올렸던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와 이 글로 나의 새우깡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2015년 5월의 어느날에 쓴 글)

자녀를 볼 때 애틋하고 안쓰런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늘 불안하고 걱정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한다. 하물며 참척의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함부로 꺼내 놓기도 어려운 단어라 하겠다. 내 아이들 역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그 기특하고 신통한 맛을 홀로 즐기지 못하고 급기야 이웃과 친지와 나누려다 보니 공연히 팔불출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래도 좋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내리사랑이란 말처럼 늘 첫째보다 둘째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둘째도 언제나 제 누나보다 부족한 것들 투성이라... 늘 신경이 쓰이곤 한다. 유치원을 다니고 취학을 하고부터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부정할 수 없게 된 것인지, 사소한 일에도 발끈하는 일이 늘었다. 가급적 조용히 타이르는 엄마와 달리 한 번씩 답답하고 버릇없는 행동을 보일 때 크게 혼낸 탓인지 아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평소에 유난히 살갑게 구는 것이 오히려 과잉친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내 새끼, 살인적인 애교를 당해낼 수 없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 녀석이 성장하여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아야지.. 행여 조금 모자라고 뒤쳐지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보듬고 사람을 만들어야지. 하는 걱정과 다짐은 유별난 게 아닐 것이다.


내 할아버지는 내 아버지께서 중학교에 다니던 시기에 돌아가셨다. 향년 서른여덟이셨다고 하니 참으로 이른 요절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 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 고개를 막 넘어가던 시절에 돌아가셨다. 그때 연세가 쉰여섯... 평균 수명이 길어진 탓인지 회갑 전에 돌아가시면 요절이라고 한다니 내 아버지도 요절하셨다고 할 것이다. 그때는 아버지께서 젊으셨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이제 그 나이가 되려면 12년밖에 남지 않은 내게는 새삼 다르게 느껴지는 건 간사한 인간의 마음일까?


내 나이가 쉰여섯이면 내 아들은 고작 스물둘... 아버지를 여읠 적 내 나이보다 많기는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그저 끔찍할 뿐이다. 조실부모한 것을 천붕이라 한단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란 말이다. 자식을 마음에 묻는 것은 평생 벗을 수 없는 마음의 짐을 지는 것이나, 부모를 일찍 여읜 것은 하늘이 무너질 만큼 직접적인 현실의 장애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원했든 그러지 않았든 간에 내 가족 안에서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내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그 역할을 하고 있건 아니건 관계없이...


아내의 위치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그건 아내의 몫이다. 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께서는 학교를 1년 간 쉬고 농사를 지으셨다고 한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나는 생계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목이 메는 그리움을 안고 20대, 30대를 보냈다. 그 험난한 시기를 홀로 이겨내야 했던 내게는 지금껏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내 아버지께서는 내 할아버지보다 꼭 18년을 더 사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 기도하는 유일한 바람은 내 아버지보다 18년을 더 사는 일이다.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일흔넷까지 세상을 볼 것이고, 우리 아이는 마흔을 코 앞에 두고 아버지의 3일장을 치를 것이다. 그렇게 나보다 힘겨울지 모르는 우리 아이의 10대, 20대, 30대를 곁에서 지켜주고 싶다.


마흔이 넘으면서 욕망해도 괜찮은 삶을 꿈꾸지만, 현실의 욕망은 사실 무병장수도 아닌 고작(?) 일흔네 살까지의 건강이다. 2015년, 혼돈의 대한민국을 사는 40대 가장의 소박한 꿈이다.


주의력 결핍이 의심되는 둘째가 작년에 한 심리상담센터에서 정밀 주의력 검사를 받았다. 주말마다 3~4번을 다니며 받은 검사의 결과는 사실 평소의 의심을 해소할 만큼의 과학적인 진단이었다. 치료방법도 처방전도 모호한, 그저 확인사살 정도였다. 그 검사 결과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검사에서 아빠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았더니 아이의 대답이 이랬다.


"평소엔 좋은데 화를 내면 무서워요.. 소리를 질러요.. 전에는 안 그랬는데 술을 마시고부터...."


단언컨대 나는 단 한 번도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가족 앞에서 주정을 피운 일이 없다. 아니 누구 앞에서도. 술버릇만큼은 점잖다고 믿었던 내게 아이의 대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이 아이가 설령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모르나, 이토록 자기 방어적인 이야기를 조작해 낸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우리 아버지보다 18년을 더 살아야 할 이유는 더욱 선명해졌다고...


오, 마이 베이비!

이전 17화놓지 않은 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