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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Mar 30. 2024

황사비

내 마음의 황사는 언제쯤 걷힐까?

중국발 황사가 기승을 부린다. 여의도 봄꽃축제가 시작되었는데 황사에 비까지 내려 축제 열기는 한풀 제대로 꺾였을 것이다. 오늘 아이의 트라우마 상담이 끝나면 들러보려 했는데 접어야 할까? 복직을 코앞에 두고 벌인 집수리 공사는 끝났지만 집안은 여전히 엉망이다. 예상한 일이지만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어떻게든 주말 동안 마무리하고 나는 복직을 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만우절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휴직을 하면서 계속 들었던 뜬금없는 생각은 결근이었다. 만우절에 결근을 하면 나의 느닷없는 도발이 애교로 받아들여질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말하자 가족들은 혀를 찼다. 나 역시 그럴만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복직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런 가당치도 않은 상상을 해본다.


한주 전에 다녀온 나의 직장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 여전함이 나에게 조금의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10년을 넘게 다닌 그곳이 익숙하지 않을 순 없다. 다만 익숙함이 불편감을 상쇄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게 나는 익숙하지만 편치 않은 직장에 복귀해 최소 5년 혹은 그 이상을 다녀야 할 운명이다. 집수리하느라 털어먹은 통장 잔고가 나의 운명을 확인해 주었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어제도 아내에게 폭발을 했다. 그녀의 둔감함과 서툰 생활력(?)에 나는 지쳐있었고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일상의 무분별한 패턴에 분노하곤 한다. 그 표적이 아내로 향하는 이유는 알지만 그 부질없는 일이 내 마음을 더 황량하게 했다. 나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만만한 그녀를 골랐는지도 모른다. 내 분노의 원인이 온전히 그녀의 탓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와 다투는 동안 아이들은 방에 모여 대책을 강구했다고 한다. 둘이 따로 나가 자취를 할까? 아니면 엄마아빠를 주말부부로 만들까? 가정불화에 애꿎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나를 탓하며 그날 밤 아이들과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나는 만취해 들어가 잠을 청했고 개운하지 않은 몸으로 일어나 아이들을 챙겼다.


어제 아내와 다투고 나서도 나는 주문한 블라인드를 아이방에 치느라 전동 드라이버를 돌렸고 결혼 생활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아래층 아주머니의 따가운 잔소리를 접했다. 현관 너머로 들리는 신경질이 잔뜩 섞인 목소리가 불편했던 심기를 자극했지만 소주 한잔으로 삭히고 다시 하루를 산다. 도무지 답이 없는 삶이 이어지지만 내 아이들은 그래도 밝게 자란다.


아들은 1년여의 간병 덕분인지 우울감이 한결 줄었다. 불안과 공황이 여전히 일상의 회복을 방해하지만 삶의 의지를 잃을 만큼 끔찍했던 우울감과 분노를 제법 털어냈다. 1년을 통으로 날렸어도 이만한 보상은 없다. 그런데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도 억장이 무너지는 건 고작 만 열일곱 살 아이가 겪기에 너무나 가혹한 현실을 지나칠 수 없어서다.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을 통째로 날리고 겨우 출석일수만 채워 유급을 면했고 지금도 조퇴와 결석을 반복하고 있다. 교과수업과 실기수업에 가끔 참석하게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지만 이 아이가 앞으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미어진다. 얼마나 더 미어져야 어른이 될까?


주말에 아이와 성당에 다녀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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