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산우공 Sep 23. 2024

밀어붙여봐

아버지의 말씀

삶의 루틴이 무너졌고 미래가 불투명해졌으며 암울한 일들이 반복되었다. 1년의 휴직으로 우울증 투병 중인 아이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홀로 서는 법을 모른다. 그 아이의 우울감은 계속 나에게 전염되었고 그런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아내로 인해 증폭되었다. 아내는 홀로 힘겹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복직을 했지만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불가능했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 아이를 챙겼고 자주 사무실을 나와 아이를 챙겼다. 주어진 업무는 그럭저럭 해결했지만 언제나 숨이 가쁘고 일상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불안이 내재된 삶이었다. 그러니 탈이 날 때도 되었다.


아이는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우울감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 아이를 수차례 감당해야 했던 나는 이제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아내는 여전히 아이처럼 헤맨다. 아이의 감정을 읽거나 소통하지 못한다. 그런 아이의 멘탈은 자주 흔들렸고 큰아이에게도 전이되었다.


모두가 힘겨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이 상황이  힘겹다. 그런데 내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이 가정은 공중분해되고 말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데.... 나는 진짜 체력이 바닥났다. 서 있을 기력도 없다. 그런데 내가 서 있지 않으면 모두가 드러누울 것이기 때문에 나는 스러질 수 없다.


그 고뇌에 파묻혀 잠을 이룬 어젯밤 꿈속에 3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오셨다. 미소를 지으시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밀어붙여봐"


그럼 다 이루어질 것 같다는 얼굴을 하고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꿈속에서 안도했으나 아침부터 우울하다. 내 꿈속의 안도는 아무런 근거도 맥락도 없었기 때문에 오늘 오전의 침울함이 더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의 보고서를 2주 안에 써내야 한다. 그런데 아들은 급격히 가라앉고 있고 내 몸도 그렇다.


무엇을 어떻게 밀어붙이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하는 데까지 해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야 하는 것밖에 없다. 내가 견디지 않으면 모든 게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밀어붙이다의 사전적 의미는 한쪽으로 세게 몰고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밀어붙이기로 했다. 첫째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스러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에 아들과 나선 드라이브 길에는 유난히 하늘이 높고 파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탐. 진. 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