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산우공 Nov 04. 2024

인생에 가족을 대체할 답은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한해(?)가 넘어가고 있다

아직 두 달 가까이 남았는데 섣부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내 징글징글한 삼재해의 9부 능선을 넘겼기 때문이다. 고지가 코앞이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닌데 나는 조금씩 안주하려고 하니 이렇듯 간사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리라.


어떻게든 버텨내겠지 하는 희망과 그러다 전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근심과 하루하루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불안이 교차하던 시간들이 모여 벌써 천일을 넘겼다. 이제 좀 내려놓아도 좋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또 모든 게 허물어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힘겹게 쌓아온 천일의 시간만큼 쉽게는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조금은 생겼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던 고난의 세월이 모래성 같은 나의 가정을 휩쓸고 갔지만 나의 모래성은 아직 견뎌내고 있다. 골조도 없어 보이던 곳에 조금씩 내성이 생겨 우린 꽤 서로를 신뢰하면서 철근과 콘크리트를 대체하고 있다.


아들의 우울증으로 시작했던 재작년의 절망이 나의 휴직으로 아주 미세하게 수습되었고 나의 복직으로 재발된 아이의 혼란은 숙려제를 거치며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 3년의 시간 동안 내 어머니는 세 차례 응급실과 장기입원을 반복하셨고 아내마저 아이의 병원에 신세를 진 지 벌써 6개월이 훌쩍 넘었다.


그래도 우리는 잘 버티고 있고 가죽공예를 시작한 아들은 이제 희망의 끈을 찾아냈다. 그 계기가 아이에겐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고 그 끈을 연결해 준 교장선생님은 6개월 만에 사임을 하시고 선거에 뛰어드셨다. 무슨 조화인지 의아해 질만큼 나에겐 항상 무너지기 직전에 동아줄이 내려왔다.


종교가 없는 이에게도 알 수 없는 선한 영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순조롭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의 복직은 묘한 흐름을 타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내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답을 해줄 수 없다. 그저 내가 지난 3년 동안 버티어낸 힘은….


노심초사 안절부절 전전긍긍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번씩 무너져 내렸지만 오래지 않아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나의 가족은 어떤 식으로든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 그 존재는 참으로 놀라웠다. 그들은 내게 선물이 되어 주었고 가정을 이루고 싶어 했던 나의 욕망은 내 삶에 유일한 정답이었다. 내게 가족은 모범답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필귀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