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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유감

을사년을 맞이하며 느끼는 소회

by 낙산우공

그야말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해는 날마다 저물고 다시 뜨는데 왜 1년이 지날 때마다 유난스럽게 이 표현을 쓰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았으니 매일매일 뜨고 지는 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주기가 흘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값진 해가 될 것이라 믿고 싶었던 갑진년이 저물고 을사년이 밝아오려 하고 있다.


새해가 을사년이라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을사년을 모르는 이 또한 없다. 좋은 기억일리 없지만 어쨌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을사년을 맞는다. 120년 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무대가 되었던 그 을사년이다. 느닷없이 '을씨년'스럽다는 단어가 떠오른 건 단순히 어감 탓이기를 바란다.


많은 이들이 연말이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잊고 희망 찬 새해를 꿈꾼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연말과 새해를 맞는 소회가 무뎌졌다. 다사다난했던 것으로 치면 지난 3년과 같았던 적이 없었을 만큼 역대급이었는데 어째서 나는 새해의 희망을 꿈꾸지 않게 된 걸까? 나이 탓일까? 성숙해진 걸까? 아니면 비관적이 된 걸까?


세 해 정도를 끔찍한 나날(?)로 도배를 하고 나면 무뎌질 법도 하다. 나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3년을 지냈지만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희망찬 새해 따위는 언감생심 꿈꾸지 않는다. 그저 지나간 세 해만큼만 무슨 일이 생겨도 버티어 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나이를 먹은 것도 성숙해진 것도 비관적이 된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지나치게 현실적인 판단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토정비결이 제아무리 좋게 나와도 우리의 삶은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50여 년을 살아보았는데 어떻게 얕은 희망 따위에 흥분할 수 있겠는가? 나는 9년에 세 해씩 지독하게 삼재를 경험하였고 그 끔찍한 시간들을 견뎌내고 나면 그럭저럭 살만 해지곤 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나에게 한 해는 그저 주어진 1년을 잘 살아내었다는 안도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우울증으로 3년째 투병 중인 내 아들이 무사히 졸업을 하고 성인으로서 조금이나마 자신의 미래와 일상을 회복하길 바란다. 단 한 발짝이라도 내디뎌 주기를 바란다. 휴학을 마치고 졸업학년이 된 딸아이가 고민 끝에 내린 자신의 계획대로 진로를 꾸려 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아내가 아주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그리하여 자신과 가정을 조금만 더 살뜰하게 살피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가 여전히 건강을 잃지 않고 이 가정의 버팀목으로서 맡은 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내기를 바란다. 120년 전 대한민국은 을사년에 국권을 침탈당하였으나 다가오는 을사년에는 대한민국이 국격을 회복하길 바란다. 나의 바람은 이토록 소박하면서 원대하다. 그래서 나의 바람은 꽤 희박한 확률에 기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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