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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발견

가족의 범위와 관계의 의미

by 낙산우공

기나긴 명절연휴가 유독 한가했던 건 계획한 여행이 펑크 난 탓도 있지만 가족모임이 소원해진 것이 컸다. 7~8년 전부터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에 형제들이 모이지 않는다. 나는 4남매의 막내지만 한때는 외아들 같았고 또 한때는 천애고아 같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모든 집안엔… 그래서 나는 이제 따로 본가를 챙긴다. 이번 설에도 아침 일찍 한동네에 사시는 어머니를 모셔와 아침상을 차려 드리고 세배를 했다. 그래봐야 오전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오후엔 인천 처가에 들러 세배를 올리고 점심을 먹었다. 홀아비가 된 처남이 아들과 일찍 자리를 뜨니 우리 가족도 세 시간 만에 집으로 나셨다. 그렇게 긴 연휴에 나의 가족행사는 하루로 끝났다. 그래서 6일의 연휴 동안 우리 가족은 아무런 방해 없이 5일을 오붓하게 보냈다. 덕분에 밀린 집안일을 해치웠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지루하지 않았고 만족스러웠지만 한편으로 부모형제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내 삶의 중심에 부모형제가 있었고 결혼을 하니 그 비중이 두 배가 되었다. 그 또한 힘겨운 일이었지만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살았다. 그러다가 본가에 먼저 균열이 생겼고 이젠 처가도 비슷한 양상이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본가의 어머니와 처가의 장인•장모님을 챙기지만 점점 연로해지시는 탓인지 내가 무관심해진 탓인지 모든 게 형식화되었다. 그 이유가 나에게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가족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관계가 갖는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혈연이라는 끈과 유년시절 함께 살았다는 것 외에 과연 부모형제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자신의 가족을 꾸린 형제들은 이제 필요에 따라 연락하는 사이가 된 지 오래다. 습관적으로 가족의 안부를 묻지만 누구의 말에도 진정성은 없었다. 그들은 형제의 가족에게 관심을 둘 여유가 없거나 그냥 관심 자체가 없는 듯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도 그들이 물어오는 안부에 아주 형식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별일 없다는 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나에겐 그동안 엄청나게 별일이 많았지만 그들은 별일 없다는 답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희로애락을 공유하지 못하는데 과연 가족일까? 성인이 된 나에게 가족의 범위는 점점 좁아져 갔다. 몸이 불편해지신 어머니는 유난히 더 당신만 챙기기 시작했고 형제들은 유난히 더 그런 어머니께 관심을 끊어갔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하신 지 십여 년이 된 장모님은 여전히 가장으로서 역할에 충실하시자만 여전히 교장선생님의 자리에 계신 듯했다. 이번 설에는 유난히 더 애국조회의 훈화말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으셨고 누구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고 당신의 감정기복에 따라 하고 싶은 말과 행동에 집착하셨다. 나는 그런 그분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들은 지 오래되었다. 오래전 가장의 지위를 잃은 장인어른은 그런 현실을 외면하는 전략으로 꿋꿋이 버티고 계시지만 그런 두 분의 공존은 언제나 위태로워 보였다.


아이들도 불편해하는 그 자리를 고작 세 시간 만에 떴는데도 우리 가족은 처갓집 아파트단지를 나오자마자 제일 가까운 카페에 들러 가장 시원한 탄산음료를 들이켰다. 그곳은 단 세 시간 만에도 우리 가족 모두를 숨 막히게 하는 공간이 된 지 오래되었다. 그 이유를 구구절절 읊고 싶진 않다. 내가 처가를 형식적으로 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장모님의 위선이었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아내의 뜻을 존중했을 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동하지만 사실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그분을 진심으로 대할 순 없었다.


이보다 나은 가족도 많을 것이고 그만도 못한 곳 또한 널린 게 우리 사회일 것이다. 다만 가족과 관계를 유난스레 따지던 유교사회 대한민국이 현재 어떤 모습인지는 짚어 볼 때가 되었다. 명절마다 대가족이 모이는 가정을 취재해 메인뉴스로 보도하는 대한민국의 가족상은 과연 평균적일까? ‘나 혼자 산다 ‘라는 방송프로로그램에서 소개한 아나운서 김대호의 양평 본가 설풍경은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아직 이 나라에 이런 가정도 있었다.


내 아이들이 나중에 나의 집을 어떻게 느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의 본가와 처가 같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도 내가 잊지 않기를 바란다. 온기를 잃으면 가족이 아니다. 그래서 난 나의 본가와 처가를 해체된 가족이라 부른다.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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