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끔찍했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내 아이에게 몹쓸 병이 찾아왔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 엄혹한 현실을 인정하게 될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2022년 10월에 진단을 받고 2개월 정도 흐를 무렵, 나는 우울과 불안이라는 병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수준이었다. 그 와중에 돌이킬 수 없을 뻔했던 사건과 직면했고 나는 2022년의 마지막 한 주를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대면하고 싶지 않은 날로부터 이제 일 백하고도 열한 주가 지났다. 그동안 나는 1년의 휴직을 하고 아이를 지켰고 복직을 하고도 끊임없이 아이를 돌봤다.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나의 가정을 일구는데 20년이나 공을 들였는데, 그 목적이 완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자만을 했던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좌절감과 마주했다.
그리고 다시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학업을 중단해야 할 위기를 두 차례나 넘기며 내일이면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식날 아이들에게 자신의 가죽공예 작품을 보여주겠다며 어젯밤 늦게까지 손바느질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흐뭇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조금만 무리해도 바로 탈이 나버리는 걸 여러 번 지켜봤기에 이 아이의 컨디션을 챙기는 건 내게 일상이 되었다.
농담 삼아 졸업장에 아빠 이름을 넣어달라고 했지만 나는 이 아이가 함께 입학한 친구들과 나란히 졸업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제때에 졸업하고 싶어 했던 것은 아이의 간절한 바람이었고 그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난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다. 아이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자퇴나 휴학을 권했던 어리석은 아빠를 깨우친 건 아이의 몫이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이라는 노래 가사를 나는 쉰셋이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내 아이의 졸업장은 진정코 빛이 날 것이다. 그 졸업장 한 장에 온갖 눈물과 땀방울이 범벅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받은 어떤 졸업장에도 그와 같은 얼룩은 없었다.
나는 가정을 일구는데 20년의 시간을 썼지만 이제 그 가정을 지키는데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고작 2년 남짓을 쓰고 지쳐버리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내일 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아이를 보면 다시 힘이 날 것이라 믿는다. 내 가정은 내가 지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