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씀 Nov 06. 2024

물렁하면서도 단단한, 늘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것

두부, 청국장, 그리고 나물 비빔밥

그럼 청국장 먹으러 갈까?


아내와 식사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는 길이었어요. 한창 '뭘 만들어 먹지?' 고민하던 중에 아내가 외식을 제안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마트 근처에는 맛있는 김치찌개 가게가 있고, 새로 생긴 백종원 프랜차이즈 우동집도 있고요. 뭐, 먹을게 이래저래 많더라고요. 그래도 고민이 됐어요. 외식을 자주 하지 않다보니 한 번 할 때 맛있는 걸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요. 그러다 문득,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찾아둔 청국장 식당이 떠올라 발걸음을 옮겼어요.



청국장 집에서 음식을 기다리다보니, 새삼 건강해져서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서 먹는 일상 자체가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예전 같았으면 외식이 힘들거나 고작해야 죽 등을 먹었을 텐데요. 요즘은 상쾌한 가을 하늘처럼 저의 뱃속 건강도 참 좋아요. 그래서 고기를 먹을까, 김치찌개를 먹을까, 청국장을 먹을까 등등 고민해서 골라 먹을 수도 있네요.



저희가 방문한 식당의 메뉴는 간단하게 4가지였어요. 청국장, 바지락 된장찌개, 차돌박이 된장찌개, 제육볶음. 기본적으로 밥은 사발에 나오고 밑반찬을 비빔밥으로 비벼 먹을 수 있는 곳이었어요. 사실 청국장과 제육볶음을 각 1인분씩 주문하고 싶었는데요. 정말로 가는 날이 장날이라서요... 오늘은 그렇게 주문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청국장 2인분을 주문했어요.


먼저 참기름이 미리 뿌려진 사발과 보리밥이 나왔고요. 비벼 먹을 수 있는 밑반찬 6가지(버섯, 고사리, 숙주, 열무, 시래기, 무생채)가 한 접시에 나오고, 마지막으로 청국장이 뚝배기로 나왔어요. 오랜만에 맡는 청국장 냄새인데, 거기다 직접 요리하지 않고 남이 만들어준 청국장 냄새는 왠지 더 구수한 느낌이었어요. 오랜만에 맡는 참기름 냄새도 너무 고소하게 느껴졌고요. 얼른 비벼 먹어야겠다 생각했죠.



막 젓가락으로 고사리를 집었을 때 아내가 물었어요. "고사리 괜찮겠어?" 크론병 환자인 저는 질긴 야채를 먹으면 배가 아프거든요. 게다가 고사리는 굉장히 질겨서 크론병을 진단받기 전에도 잘 먹지 않던 음식이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왜인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고사리를 씹어보니, 청국장 집의 고사리는 너무 부드럽고 맛나더라고요. "고사리 엄청 부드러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언젠가 아내가 그런 말을 했어요. 적어도 먹는 것에 관해서는 직접 겪어본 저의 경험을 우선하는 게 좋겠다고요. 실제로 한 입 먹어보면 직감적으로 이건 안 되겠다, 이건 되겠다는 게 감이 오거든요. 아주 가끔은 욕심부려서 먹으면 꼭 탈이 났고요. 어쨌든 아내 덕분에 저도 제 입을 조금은 더 믿을 수 있게 되었고, 아내도 음식에 대한 저의 직감을 믿어주는 편이에요. 아내는 안심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한 마디 했어요. "그래도 조심해서 꼭꼭 씹어먹어~"



한 가득 비벼서 먹어본 비빔밥과 청국장은 정말 맛있었어요. 속도 아주 편안했고요 :)








사실 크론병 환자인 제게 청국장과 나물 비빔밥은 정말 대치되는 느낌이에요. 청국장은 속이 편한 음식이고 나물 비빔밥은 소화가 어려운 재료들이 가득한 음식이거든요. 재밌는 건 아내와 제가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하다는 거예요. 당시의 저는 나물을 못 먹고 두부만 먹는 사람이었고요. 아내는 나물반찬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아마 연애 초에는 아내가 힘들었을거에요. 저와 식사하려면 고기만 먹거나 나물류가 거의 없는 음식만 먹어야 했거든요. 음식 취향이 다르면 헤어지기도 한다는데, 저희는 그 다름을 극복하고 결혼했어요. 그리고 저는 전업주부가 되었지요.



전업주부가 되고는 종종 아내를 위한 나물반찬에 도전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결과는? 늘 실패였죠. 아무리 해도 제가 먹지 못하는 나물반찬을 맛있게 만들기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저희 집에서 유일하게 사 먹는 반찬이 바로 나물반찬이에요. 매번 사 먹지는 않고요. 종종 아내가 "나물 먹고 싶다"할 때면, 동네에서 찾은 맛난 반찬가게에서 아내 취향의 나물을 한껏 사와서 일주일 정도 먹어요.



그런데, 음, 생각해보니... 오늘은 제가 고사리가 섞인 나물 비빔밥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더라고요. 가장 질긴 고사리도 잘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나물 반찬도 맛있게 할 수 있을까요? 이참에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겠어요!


이런 평안하고 음식을 먹어도 아프지 않은 일상이 지속되면 좋겠어요. 나물을 먹어도 아프지 않은 오늘 같은 날 말이에요 :)



'먹을 수 있다는 행복한 기적' 브런치북에는 크론병 환자로서 가진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되는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