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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Nov 13. 2024

응급실에 누워서도 먹고 싶었던 것

바로바로 돈가스

진짜 먹고 싶다. 돈가스...


조금 웃기지만요. 한참 아파서 응급실에 누워있을 때도 먹고 싶었던 음식이 돈가스였어요. 크론병 활동기로 소화기에 염증이 많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던 때였는데요. 다들 아실테지만, 아프면 입맛도 없고 먹고 싶은 음식도 없잖아요. 저 또한 그랬고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없었는데요. 이상하게 만은 돈가가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경양식 돈가스나 일본식 돈가스 혹은 아무 돈가스가 아니라요. 종종 먹었던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 있는 '명동돈가스'가 먹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돈가스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명동돈가스에 가기 전에는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아마 돈가스의 첫 기억이 썩 좋지 않아서였던 것 같아요.



제 첫 돈가스는 엄마의 계모임에서 먹은 경양식 돈가스였어요.

기억하기로 제게 편한 자리는 아니었어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낯선 곳에서 처음 먹는 음식이라니, 어릴 때부터 소심했던 제게는 너무 피하고 싶은 자리였어요. 그래도 경양식집은 당시에도 흔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라서 열심히 먹었는지 아직도 단편적으로 기억이 나요.



조그마한 빵이 두어 개가 있었는데요. 빵 하나에는 딸기잼을 발라 먹었고요. 남은 빵 하나는 후추를 뿌린 스프에 찍어 먹고, 남은 스프는 호로록 마셨어요.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소스를 잔뜩 뿌린 얇은 돈가스와 미니 샐러드, 단무지, 그리고 약간의 밥이 한 접시에 함께 나왔어요. 시끌벅적한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히 우물우물 먹긴 먹었는데 뭐랄까요. 빵의 맛에 대한 기억은 나는데 돈가스의 맛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요. 그저 불편하고 먹기 싫었던 기억만 꽤 크게 남았던 것 같아요.



그 뒤로 20대 중반까지는 돈가스를 제 돈으로 사 먹은 기억이 없어요. 가끔 학교에서 급식으로 나온 퍽퍽한 돈가스나 군대에서 제가 직접 만든 돈가스를 먹었던 기억은 있네요. 제가 취사병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일주일에 2-3번은 700인분의 튀김을 만들었는데요. 하루종일 기름 앞에 서 있으니 기름 냄새에 질려서 먹고 싶은 생각도 안 들더라고요. 남들은 돈가스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다투는데, 저는 그냥 그날의 식단이라서 먹는 정도였어요. 이래저래 돈가스 먹을 일이 참 없었네요.



사실 저는 돈가스만이 아니라 음식 먹는 일에 별 감흥이 없었어요. 그냥 있으면 먹고 남들이 맛있다면 함께 먹는 수준이랄까요. 살기 위해 먹는 정도였죠. 근데 또 음식 만드는 과정은 좋아했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레스토랑에서 일하기도 하고 음식 만드는 영상이나 책도 많이 봤고요. 요리가 좋아서 '요리사를 할까?' 생각도 했는데요. 만드는 과정은 좋아하지만 먹는 일에 관심이 없는 까닭인지, 직업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가정주부가 되어서 제 아내만의 요리사로 살고 있지만요 :)








재미있는 건 제게 음식 맛에 눈을 뜨게 해 준 음식도 돈가스라는 거예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생이 되어 학교로 돌아온 20대 중반, 저는 수업을 마치면 종로에 있는 어학원으로 공부를 하러 다녔는데요. 종종 홍대에 사는 친구가 스쿠터로 저를 데려다주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말하더라고요. "내가 알바하는 카페 사장님이랑 명동에 있는 돈가스 먹으러 갈건데, 너도 같이 가자. 진짜 맛있어." 어차피 저도 식사를 해야 했고, 명동이면 종로 어학원에서 걸어가도 10분이기에, 흔쾌히 가자고 했죠.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가는 돈가스집이었던 명동돈가스, 그 곳에서 저와 제 친구 그리고 카페 사장님 셋이서 돈가스를 먹었어요. 가게는 누가 봐도 일본풍이었는데, 가게 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고소하게 끓는 기름 냄새가 났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돈가스를 '진짜로' 알게 된 것 같아요. 똑같이 생겼는데 등심과 안심으로 다르다는 것도 신기했고, 치즈가 들어간 돈가스는 심지어 코돈부루라는 이름이 따로 있는 것도 재밌었어요. 카페 사장님은 일본에서 요리 유학을 하신 분이었는데요. 그 분이 말하길, "명동돈가스가 최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왠지 열린 마음으로 돈가스를 먹어보게 됐어요.



일본식 돈가스는 처음이었는데, 세상에 너무 맛있더라고요! 친구가 이 가게는 장국이 으뜸이라길래 마셔본 장국도 정말 구수했고요. 장국 속에 숨어있는 두부와 돼지고기 찾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양배추 샐러드는 참깨드레싱을 뿌려먹는데 이날 저의 샐러드 취향까지 찾을 수 있었죠. 카페 사장님은 그날 돈가스를 무려 2인분이나 드셨고요. 전 깨달았죠. "아, 돈가스는 맛있는 음식이었구나"



그날 이후로는 돈가스를 먹으러 친구와 함께 가기도 하고, 가끔은 혼자서도 갔어요. 1층은 다찌식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혼자 먹기에도 부담없는 느낌의 식당이거든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 크론병 환자가 되면서, 한동안은 명동돈가스를 가지 않았어요. 바깥 음식을 먹고 갑자기 배가 아파서 응급실에 가긴 싫었거든요.



하지만 차츰 크론병도 나아져서요. 와이프와 연애할 때 데이트로 가보고 아프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요. 지난 주에도 브런치에 글 쓴다는 핑계로 다시 한번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제가 처음 갔을 때는 등심 돈가스가 8,000원이었는데, 지난 주에 가보니 15,000원이더라고요. 참, 세월 변하는 걸 모르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변한 음식값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하네요.




여전히 맛있는 양배추와 참깨 드레싱의 조합



명동돈가스는 제게 참 고마운 가게에요. 크론병으로 아파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때, 오직 그 집의 돈가스만은 먹고 싶었으니까요. 그래서 "나아지면 꼭 돈가스 먹으러 가야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주변 지인들에게 말하며 희망을 나누고 고통도 약간은 덜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결국은 크론병도 나아졌고, 이제는 아내와 데이트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어요. 다 맛있는 돈가스 덕분이죠.



한동안 누워서도 앉아서도 돈가스 냄새와 맛이 그리웠는데요. 오늘도 벌써 지난 주에 먹은 돈가스가 그립네요. 자주 먹으면 살찌지만, 종종 먹어도 괜찮겠죠. 오늘은 저녁은 돈가스 어떠신가요?



*참고로 저는 명동돈가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관계가 있으면 좋겠네요..


'먹을 수 있다는 행복한 기적' 브런치북에는 크론병 환자로서 가진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되는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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