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듣고 깊이 공감했던 말입니다. 돌아보면 예전의 저도 그랬어요. '내가 건강하면 이렇게 살고 싶었는데...'라며 매일 상상하는 삶이 있었어요. 아프지 않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삶. 특히 제가 음식 만들고 먹는 걸 좋아해서요.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여행을 다니기도 하는 상상을 많이 했어요.
물론 저는 죽음까지는 경험하지 않은 흔한 크론병 환자일 뿐이지만요. 저는 제가 죽음 앞까지 다녀왔다고 느꼈어요. 정말 모든걸 잃어버렸었거든요.
크론병 초기, 한창 아플 때는
입에 넣는 모든 음식이 도전이었어요. 긴장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가끔은 물만 마셔도 배가 아프고 토를 하곤 했거든요. 처음 미음을 먹을 때도, 미음에 적응하고 바깥 음식인 호박죽과 카스테라를 먹었을 때도 엄청 긴장했었어요. 다시 시작하는 모든 음식은 한입 먹고 1시간 이상 기다리며 제 배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살펴야했죠. 기다렸다가 괜찮은 것 같아도 겨우 반 정도만 천천히 먹을 수 있었어요.
먹는 것뿐 아니라 일상도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어요. 혼자서 3걸음 이상 걷기도 힘들었고요. 경제생활도 당연히 할 수 없었어요. 이미 저는 부모님께 독립해서 따로 살고 있었고, 집값이나 고정비 등 한 달에 나가야 할 돈들이 많지는 않아도 꽤 있었죠. 근데 크론병 확진을 받고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직장을 휴직했었어요. 그랬더니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모아놓은 돈들이 빠르게 사라지더라고요. 몇 개월 동안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며, 일상의 붕괴를 느끼고 위기감이 엄습했어요.
편하게 쉬는 것도 아니고, 뭐 하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니, 어떤 즐거움도 없고, 저의 현재와 미래가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럴수록 자꾸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더라고요. 크론병 확진 전까지, 매일 출근하고 일하고 점심 먹고 퇴근하던 삶이 어찌나 그립던지요. 그리고 가끔 친구들 혹은 동료들과 함께 술 한잔 하던 자유가 어찌나 간절하던지요.
누워있을수록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재를 원망했고, 미래가 불안하더라고요.
그런데, 크론병 8년차인 지금
저는 평범한 일상을 다시 찾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고요. 제가 차리는 음식을 아내와 나누고 있어요. 그리고 종종 맛있는 음식을 찾아 아내와 여행도 다니고 있습니다. 아, 특별한 날이면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그토록 바라던 술 한잔을 하기도 하고요.
작년에는 크론병 환자인 제게는 큰 도전이었던 해외에서 살아보기를 아내와 함께 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들이 가득한 태국을 다녀왔는데요. 아내와 함께 여러 음식을 도전하고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이 모든건 너무 고맙게도 중환자실 간호사였던, 제 보호자인 아내 덕분에 가능했고요.
바라던 것들을 이룬 시점에서 돌아보니 하루하루의 삶이 제가 간절히 원했던 일상이더라고요. 이제는 배가 고프지 않아서, 맛이 없어서, 너무 많이 먹어서 등 먹을 수 있는 것도 먹지 않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원했던 일상인 것만은 변함없어요. 먹지 못했던 삶이 정말 지난 과거가 되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익숙해져만 가는 일상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만끽하고자 합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범해서 귀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들을 즐기는 삶을 기록해보려고요. 이제는 흘러버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건강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오늘의 귀한 일상을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평범해서 더 귀한 저의 일상 속 맛있는 이야기, 함께 보시겠어요?
▶ 본 글은 프롤로그로서, 본 내용은 아래의 브런치북에 매주 수요일 연재될 예정입니다. 부디 즐겁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