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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Nov 27. 2024

3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너란 음식, 삼겹살

100살까지 함께 하고 싶어

저는 사람 만나는걸 피곤해하고,
친구도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크론병으로 아플 때가 많아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이 그리웠어요. 집과 병원만 다니며 자유를 빼앗긴 느낌이라 그랬을까요. 괜히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던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지더라고요. 혼자 사람 만나는 상상도 해봤는데요. 그러자 자연스레 삼겹살도 함께 떠오르더군요. 불판에서 자글자글 구워지는 기름기 가득한 삼겹살과 주변을 둘러싸고 익어가는 마늘, 김치, 콩나물 그리고 상 주변에 펼쳐진 쌈 채소와 갖은 밑반찬들까지. 거기에 소주 한잔과 시끌벅적한 사람들과의 대화들은 참 즐거웠거든요.



요즘은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는 분들도 많고 저 또한 혼밥 경험이 많습니다. 근데 삼겹살 혼자 드시는 분은 쉽게 만나지 못한 것 같아요. 물론 혼자 드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삼겹살을 혼자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항상 가족, 친구 혹은 회사 동료들과 먹었던 음식이 삼겹살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게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음식이 삼겹살인거죠. 그래서 크론병으로 혼자 집에 있던 시간에 삼겹살이 그렇게 그리웠나봐요.





어릴 때는

부모님 심부름으로 정육점 다녀 올 일이 많았어요. 엄마는 제게 "삼겹살 1근 사오고, 껍데기랑 파채도 넉넉하게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려"라며 심부름을 시키셨죠. 그럼 저는 동네에 자주 가는 정육점의 사장님께 엄마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드렸어요. "아저씨, 저희 엄마가 삼겹살 1근이랑 돼지껍데기랑 파채 달라고 하셨어요" 그럼 사장님이 봉지 가득 삼겹살과 껍데기, 파채를 담아 주셨고요. 그러다 사장님께서 파 값이 많이 올랐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더니, 어느 날부턴가 파채 서비스가 없어졌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심부름으로 삼겹살을 사오면 자그마한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부르스타와 불판을 놓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어요. 부모님은 맥주 한 잔씩 마시기도 하셨고요. 저와 동생은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며 삼겹살을 먹었죠. 그때 엄마가 만든 삼겹살 양념장은 조금 특별했어요. 다진 마늘에 간장, 식초, 설탕을 넣어 만든 새콤달콤한 양념장이었는데요. 먹고 나면 다음 날까지 입에서 마늘향이 진동했었지만 정말 맛있는 양념장이었어요.



삼겹살 먹는 날은 가족끼리 대화하는 날이기도 했어요. 어릴 때 부모님은 맞벌이에 출근시간은 이르고 퇴근시간은 늦으셔서 대화 나눌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아주 가끔 집에서 삼겹살을 먹는 날이면, 그동안 못 나눴던 대화를 한껏 나눈 기억이 나요.



부모님은 직업이 자주 바뀌셨다보니 힘든 일도 더 많으셨던 것 같아요. 당시 엄마는 신문사에서 편집자로 일하셨는데 회사생활이 힘들다고 푸념하셨고요. 당시 아빠는 택시기사셨는데 강도 만났던 이야기를 덤덤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요. 저는 주로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부모님께 뽐냈던 기억인데요. "아빠, 내가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읽었는데 일본은 지금 연호가 헤이세이래"라고 말하자, 아빠가 "그런게 있어?"라고 반문하기에 제가 책을 들고 와서 보여줬던 기억이 나네요.



저희 가족이 빙 둘러 앉아 삼겹살을 먹는 날이면 식사시간이 유독 길었던 것 같아요. 다음에 먹을 삼겹살은 다음 달이 될 지, 2달 뒤가 될 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죠. 그래도 함께 삼겹살을 먹는 날만큼은 비좁고 컴컴한 반지하 집에서도 가족 모두 마음껏 웃을 수 있었어요.





시간이 흘러

대학에 입학하고나서야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게 됐어요. 돌이켜보니 저는 집에서만 삼겹살을 먹었더라고요. 삼겹살은 엄마가 만들어 준 마늘소스와 김장김치 그리고 밑반찬과 함께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서 먹던 음식이었는데, 바깥에서 먹는 삼겹살은 꽤 낯선 일이었어요.



물론 식당에서 구워먹는 삼겹살도 당연히 맛있었어요. 밖에서 먹는 쌈장과 된장찌개, 밑반찬도 맛있었고요. 어릴 때 먹던 것처럼 삼겹살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 자리인 것도 변함이 없었어요. 친구의 연애 이야기나 인생 푸념을 듣기도 했고요. 회사에 취직해서는 소주를 곁들이며 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직장 동료의 몰랐던 가족사나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요. 그렇게 오래오래 삼겹살은 저와 사람을 이어주는 창구 같은 음식이었어요.








옛 기억들을 되짚다보니, 크론병으로 집에 누워있을 때 괜히 삼겹살이 떠오른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삼겹살은 핑계일 뿐이고, 삼겹살 뒤에 있던 사람들과 곁들임 소주를 핑계로 솔직하고 편안하게 나눴던 대화들이 그리웠던 거죠. 사실 크론병으로 아프기 전에는 사람들 만나는 게 귀찮아서 피했거든요. 가능하면 회식도 피하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자주 취소하고 자취방에 숨어 지냈는데요. 혼자가 되어보니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저도 사람이란 사실을요.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제 생각도 조금은 변했어요. 크론병이 나아져 일상 생활은 해도 한동안 삼겹살은 먹지 못했지만, 사람들과 대화라도 나누려고 삼겹살 집은 꼭 따라갔던 기억이 나요. 사람들이 제게 "삼겹살 먹어도 괜찮아?"라고 물으면 "다른 거 먹으면 돼요"라고 말했죠. 그렇게 따라가서 이야기만 실컷 나누다가 저는 집에 돌아와 방울토마토나 카레 혹은 두부를 먹고 잠들었고요.



또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가능하면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내가 다시 크론병으로 아파서 오랜 시간 못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 사람과 만나는 순간에 최선을 다했어요. 결국 중요한건 삼겹살이 아니라 제 마음가짐이더라고요.



이제는 회사도 그만두고 가정주부로 살면서 아내와 주로 삼겹살을 먹어요. 제 아내는 구워먹는 고기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아내와 고기 먹는 날이면, 어린 시절 저희 집처럼 재잘재잘 대화하며 고기를 먹는 편이에요. 그래도 가끔은 왁자지껄한 사람들 사이에 껴서 먹는 삼겹살이 먹고 싶을 때가 있긴 해요. 여전히 삼겹살은 맛있는 음식이고 즐거운 음식인 것 같아요.




'먹을 수 있다는 행복한 기적' 브런치북에는 크론병 환자로서 가진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되는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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