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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Dec 04. 2024

좋아하지만 멀리해야 하는 나의 영원한 친구

너의 이름은 과자

첫 직장을 구하고 자취를 시작하면서
저의 억눌렸던 욕망들이 폭발했습니다.


그 욕망이 뭐냐면요. 바로 과자에요. 저의 작고 소중한 원룸으로 가는 퇴근길에는 홈플러스가 있었고, 저는 매일 마트에 들렀어요. 늘 먹던 과자도 하나 고르고, 달콤한 오렌지주스 한통, 가끔 세일하는 과자나 생전 처음 보는 외국과자까지 한아름 들고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행복한지. 하루를 마무리하며 과자를 와구와구 먹을 때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어요. 제게는 그 마트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달콤한 곳이었죠.



매일 마트에서 과자를 한아름씩 사오니 제 원룸에는 과자가 늘 쌓여있었어요. 가끔 친구들이 놀러오면 "무슨 먹지도 않는 과자가 이렇게 많냐?"며 한 마디씩 할 정도였고요. 저도 그게 늘 의문이었어요. 늘 먹을만큼만 샀다고 생각했는데 과자는 항상 남더라고요. 그래도 집에 과자가 가득 있다는게 행복했고, 얼마든지 과자를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제 주머니에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어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렸던 사회 초년생이었죠.








어릴 때 늘 과자가 먹고 싶었어요. 집이 과자 사먹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지 않았거든요. 그저 밥 먹는 것도 감지덕지인 시절도 있었고요. 하도 달달한 간식이 먹고 싶어서 한번은 동생이랑 집에서 달고나를 만들어 먹기도 했어요. 그러다 국자를 홀라당 태웠고요. 근데 그 국자를 본 엄마는 저희를 혼내지 않았어요. 대신 매주 수요일마다 엄마가 퇴근하면, 반지하 바깥의 작은 공간에서 달고나를 만들어 주셨어요. 그래서 저와 제 동생은 한동안 수요일 저녁 시간이 행복했던 것 같아요.


제 생에 첫 과자는 에이스였던 것 같아요. 집 사정이 나쁘지 않았을 때는 집에 과자가 조금씩 있었거든요. 저희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가 에이스였고, 항상 거실에는 아빠가 먹을 에이스가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과자라면 언제나 다 먹어버리는 아이였죠. 당연히 아빠 과자도 다 먹었어요. 에이스가 보일 때면 전부 먹어버렸고요. 사실 그때 제 입맛에 에이스는 맛있는 과자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과자니까 먹었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 에이스가 보이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집을 이리저리 뒤지다보니 아빠 옷장농에 에이스가 있더라고요! 세상에... 제가 맨날 다 먹어버리니까 아빠가 숨겨둔 것이었어요. 그럼 어떻게 했냐고요? 또 꺼내서 먹었어요. 그리고 요즘에도 종종 아빠를 놀릴 때면 그때 이야기를 해요. "아빠 맨날 과자 숨겨두고 먹는다"고요 :)



아, 프링글스가 요즘 마트에서 얼마인지 아시나요? 저는 엊그제 3,000원 초중반 가격으로 봤는데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프링글스는 아마 2,000원이 넘는 비싼 과자였어요. 어쩌다 한통 생기면 아주 조금씩 오래 먹거나, 특별한 날 그러니까 소풍 혹은 수학여행 갈 때나 사 먹을 수 있는 과자였는데요. 요즘은 오히려 프링글스가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왜 프링글스 이야기를 했냐면요. 제가 감자과자를 제일 좋아했거든요. 제 자취방에 과자가 왕창 쌓여있었지만 감자과자는 없었어요. 왜냐면요. 감자과자는 사자마자 다 먹어버렸거든요 :)



이렇게 과자를 좋아했던 제게 회사 사람들은 "00씨 과자 좋아하니까 이거 먹어요"라며 과자를 나눠줄 때가 많았어요. 그럴 때면 저는 청개구리처럼 말했죠. "저는 과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이런 제 모습에 처음에는 사람들도 당황스러워했는데, 나중에는 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과자를 제 책상에 두고 가곤 했죠. 그 때의 저는 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 과자를 나눠주던 좋은 사람들에게 말이에요.








과자는 저에게 늘 좋은 친구였어요. 누군가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도 과자를 먹었고요. 술 마시고 군것질 할 때도 과자를 먹었고요. 집에서 혼자 심심해도 과자를 먹었어요. 근데 크론병을 얻은 이후로는 한동안 과자를 먹지 않았어요. 혹시라도 과자를 먹고 아프면 어쩌나, 괜히 겁이 났죠. 크론병이 조금 나아진 후에도 건강관리를 위해 과자를 멀리했고요. 이제는 가족이 생겨서 건강을 챙기는 것도 의무가 되어서, 과자와는 더 가까워질 수 없어졌네요.



그래도 아주 가끔 과자를 먹을 때면 여전히 너무 맛있고 행복해요. 과자는 죄가 없어요. 그냥... 예전에는 매일 만나던 친구였다면, 지금은 제 사정 때문에 종종 만나는 친구가 된 것뿐이죠. 나이들고 사정이 변하면 친구관계도 달라진다잖아요. 과자와 제가 그런 것 같아요.



제게 과자는 영원히 친구일 거예요. 크론병도 체중도 관리를 잘해서, 아주 가끔이라도 오래오래 과자와 만나면 좋겠어요 :)



'먹을 수 있다는 행복한 기적' 브런치북에는 크론병 환자로서 가진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되는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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