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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 산삼, 추어탕... 아빠의 마음은 보양식

하지만 전 좋아하는 보양식만 먹고 싶은 걸요..

by 강씀
이게 건강에 좋다더라. 먹어봐~


제가 크론병을 얻은 뒤, 주변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에요. 제 몸이 걱정되셔서 여러가지 음식을 권하시는 마음은 이해하는데요. 한창 어떤 음식도 편하게 먹을 수 없는 상태이고, 아무리 좋다고 해도 먹으면 아플 게 뻔히 보이는 음식을 권유받을 때는 난감하기 그지없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는데요. 크론병 진단 후부터는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함이 꼭 필요하더라고요. 아프지 않기 위해서라도요.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 몸에 좋은 음식을 권하면 단호하게 말하고 있어요. "저는 이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크론병을 얻기 전부터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흔히들 보양식이라고 불리는 음식들을 썩 좋아하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늘 의심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왜 같은 닭인데 삼계탕이 몸에 좋다는 것일까? 친척이 딴 두릅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옆에서 자랐는데, 과연 저 두릅이 건강할까?



저는 건강에 관해서는 작용이 명확하고 효과가 입증된 것만 믿는 편이에요. 어쩌면 그래서 크론병을 확진 받은 뒤에도 담당 주치의 선생님 말씀을 믿고 꾸준히 치료에 임한 것 같아요. 주치의 선생님은 크론병에 관한 전문가이시고, 처방해주시는 약은 전세계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것이니까요. 게다가 늘 최선의 약을 선택해서 처방해주신다는 걸 그간의 입퇴원 경험으로 느꼈어요. 그래서 의료진의 말을 신뢰하고 있고요.



사실 크론병 확진을 받으면 유혹이 정말 많거든요. 지금 당장 인터넷에 크론병을 검색하면 혹할 글들이 참 많아요. 굳이 힘들게 면역억제제를 먹거나 주사제를 맞지 않아도 된다며 마음을 약하게 하죠. 어떤 음식을 먹으면 나아질 수 있다거나, 약을 먹지 않아도 완치가 될 수 있다거나 등등... 몸이 아프고 절박할수록 그런 글이 눈에 들어오고요. 근데 제 생각은 이랬어요. 만약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음식과 치료법으로 크론병이 완치된다면... 그 음식이 처방약이고, 그 치료방법이 세계 표준 치료방법이지 않을까요?



어쩌면 깐깐하다고 할 수 있을 이 태도가 제가 보양식을 대하는 자세에요. 그래서 저는 크론병을 얻기 전에도 보양식으로 가족 간에 다툼이 있었고요. 크론병을 얻은 뒤로는 제 건강을 걱정해주는 어른들과 종종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냥 먹으면 되지 않냐고요? 아니요. 제 몸인걸요.







저는 보양식에 회의적인 사람이에요. 짐작하기로는 보양식이 보양으로 의미가 있던 시절은 한끼 먹기도 힘든, 음식이 부족했던 시절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고요. 예전에는 보릿고개라는 말처럼 쌀밥 한그릇 먹기도 힘든데다가 고기가 엄청 귀한 음식이던 시절도 있었잖아요. 그때는 여름에 닭 한마리 푹 끓여서 먹으면 힘이 나지 않았을까요? 요즘처럼 먹고 싶은 음식을 언제든 먹을 수 있고, 영양제들이 풍부한 시대에는 보양식의 의미가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희 아빠는 건강에 좋다는 음식이라면 아무리 맛없고 먹는 방법이 험난(?)하더라도 기어코 드시는 분이에요. 한번은 눈 뜨자마자 보약을 드시면서 웩웩 헛구역질을 하시면서도 끝까지 드시는 분이죠. 당연하게도 아들인 제게도 항상 건강한 음식을 권하셨고요. 그러고보면 건강식과 관련해서는 아빠와 관련된 추억이 많아요.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아침마다 홍삼을 마셨어요. 아빠는 홍삼이 가득 담긴 컵을 들고 직접 저를 깨우셨는데요. 눈 뜨고 일어나자마자 입으로 홍삼 물이 벌컥벌컥 들어오는 기분은, 음, 아빠의 사랑이라기에는 너무나 쓰고 역했네요. 매일같이 짜증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일어났었죠.



크론병 확진을 받던 초반에는 살면서 가장 음식을 먹기 힘들었던 때인데요. 음식 냄새만 맡아도 배가 아픈 것 같았고, 평소에는 없어서 못 먹던 피자나 햄버거도 먹고 싶지 않던 시기였어요. 섬유질이 조금만 있는 음식을 먹으면 여지없이 화장실에 가야해서 죽이나 카스테라 말고는 먹을 생각도 못했었어요. 힘없이 누워만 있던 제게 아빠는 '산의 고기'라며 두릅을 먹어보길 권하셨는데요. 저는 언뜻 봐도 억세보이는 두릅을 보고는 그동안의 힘들었던 감정이 폭발해버리고 말았죠. 일반 채소도 못 먹는데 두릅을 어떻게 먹냐며 화를 냈고, 아빠와 한참을 또 서먹하게 지냈었네요.



또 추석 때 아빠 선물로 귀해보이는 산삼이 들어온 적이 있어요. 크고 비싸보이는 상자에는 자연산 산삼이 두 뿌리나 들어있었어요. 먹는 방법이 적힌 종이도 있었고요. 그 날도 역시 아빠는 제게 산삼을 먹어보길 권하셨어요. 그때는 몸이 제법 건강해진 뒤라 못 이기는 척 산삼을 먹어보려 했어요. 실뿌리부터 조금씩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는데요. 특유의 맛과 향 때문에 자꾸 속이 울렁거려서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 아빠와 엄마가 한 뿌리씩 드셨어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보양식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먹고 싶을 때 먹었던 보양식은 정말 제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한번은 감기몸살로 집에 누워 있을 때였어요. 출근도 못하고 하루종일 끙끙 앓았는데, 부모님은 퇴근하시고도 낫지 않은 저를 보고 걱정이 크셨나봐요. 입맛이 없어서 밥도 못 먹겠다는 저에게 아빠는 오리고기 맛있는 곳이 있으니 외식하게 나가자고 하셨어요. 거절할 기운도 없던 저는 비몽사몽 오리고기 집에 갔는데요. 그 곳은 정말 아주 따뜻했고요. 황토로 만들어진 건물이 인상적이었어요. 모두가 배고팠는지 셋이서 오리를 2마리나 먹었는데요. 그리고 다음날, 신기하게도 제 감기는 씻은 듯이 나았어요.



아, 요즘의 저는 든든하게 먹고 싶을 때 추어탕 먹는 걸 꽤 좋아하는 편인데요. 사실 어릴 때는 추어탕을 썩 좋아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친할아버지, 아빠와 함께 경기도의 유명 추어탕 가게로 종종 추어탕을 먹으러 가곤 했는데요. 당시의 저는 어린 마음에 미꾸라지탕을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고, 알 수 없는 것들이 씹히는 추어탕이 별로였어요. 저와 달리 할아버지는 추어탕을 항상 아주 맛있게 드셨어요.



한참을 지나 저도 몇번 추어탕 맛을 보고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였어요. 하루는 아빠가 추어탕을 먹자고 해서 추어탕집에 갔어요. 앉자마자 아빠가 묻더라고요. "여기 기억나? 할아버지랑 왔었잖아" 왠지 아빠는 제 대답을 듣기보다는 그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곧 추어탕이 나오고 한 숟가락 떠먹는데, 갑자기 추어탕을 맛있게 드시던 할아버지 기억이 났어요. 괜히 저도 이유 없이 추어탕을 먹으면 힘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보양식에 회의적이던 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날이었어요.








보양식은 건강하라고 먹는 음식이잖아요. 저는 필요할 때 먹을 수 있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보양식이라고 생각해요. 또 추억 속 맛있었던 음식을 다시 먹으며 힘을 낼 수 있다면 그 음식이 보양식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러고보면 보양식을 좋아하는 아빠와 참 많이 다퉜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 추억인 것 같아요. 어떤 음식을 봐도 아빠가 떠오르고, 먹으면서 아빠 생각에 웃음짓게 되니까요. 어릴 땐 참 먹기 싫었는데 아빠와의 추억이 보양식을 보양식답게 만들어 준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참 경기도 안 좋고 한끼도 마음 편하게 먹기 힘든 시기잖아요. 이럴 때 먹고 싶은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게 이번 겨울을 잘 지낼 수 있는 보양식이 아닐까요? 요즘은 감기도 오래 간다는데, 오늘은 몸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든든하고 푸짐한 보양식 드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와이프가 이 글을 읽고 아버님 건강하게 잘 계시는데 너무 추억하는 것 같다고 하네요. 저희 아버지 보양식 많이 드시고 아주 튼튼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다^^



'먹을 수 있다는 행복한 기적' 브런치북에는 크론병 환자로서 가진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되는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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